[문화] 16년 전 흥행 망작 ‘비주얼 컬트' 됐다…MZ 추앙받는 '無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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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만에 4K 리마스터링 감독판으로 재개봉한 영화 '더 폴: 디렉터스컷'이 개봉 43일만인 지난 5일 누적 관객 10만2400여명을 돌파했다. 이번 개봉판은 오리지널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 제작된지 18년만에 4K 디지털 복원으로 더 화려한 영상, 새로운 장면을 추가한 감독판이다. 사진 오드

“2023년 신작(‘디어 자시’)으로 토론토영화제에 갔을 때 많은 비평가가 ‘더 폴’을 왜 볼 수 없느냐는 거예요. 20년 전 그토록 이 영화를 알리려 했을 땐 어디 있었냐고 되물으니 다들 ‘그땐 10살이었다’더군요. 새로운 세대가 이 영화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타셈 싱 감독)

16년 전 흥행 실패작 #관객 3배 들었다… #컬트 추앙 ‘더 폴’ 감독판 #CG 없이 24개국서 촬영

16년 전 흥행 쪽박 영화가 추앙받는 컬트 걸작이 됐다. 지난해 12월 25일 감독판이 국내 개봉한 인도 감독 타셈(본명 타셈 싱‧64)의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이하 더 폴)’ 얘기다. 원작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의 일종의 감독판이다. 멀티플렉스 CGV 집계, 이 영화 관객의 70%가 20~30대다.

“SNS를 전혀 하지 않아 ‘더 폴’의 열성팬이 있는 줄 몰랐다”는 타셈 감독은 개봉판 필름을 지난해 비로소 4K 디지털 리마스터링판으로 출시했다. 9월 북미 OTT 플랫폼 ‘무비’를 통해 재조명됐고, 이어 한국에선 극장 개봉하며 지난 5일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상영관 50개 남짓한 예술영화로선 큰 흥행이다. 2008년 개봉 당시 총 관객수의 3배를 넘었다. 이를 기념해 4일 내한한 타셈 감독이 6일 서울 용산 CGV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4년간 24개국 촬영 "미친 어리석음, 시각적 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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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10만 관객 돌파를 기념해 한국을 찾은 인도 감독 타셈 싱이 6일 서울 용산 CGV에서 내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영화를 처음 개봉한 16년 전 흥행 참패한 그는 “그래도 평가가 엇갈리는 게 낫다. ‘그 영화가 그냥 괜찮다’는 (미지근한) 평가가 더 무섭다”고 돌아봤다. 사진 오드

‘더 폴’은 전세계 24개국 명소에서 일체의 컴퓨터그래픽(CG) 없이 현실과 허구를 넘나든 제작 과정부터 화제가 됐다. 불가리아 영화 ‘요호호’(1981)를 재해석한 내용으로, 1920년 미국 무성영화 시대, 할리우드 병원에 영화 촬영 중 추락사고로 실려온 스턴트맨 로이(리 페이스)가 오렌지를 따다 떨어져 뼈가 부러진 이민자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에게 들려주는 환상담. 인도‧인도네시아‧나미비아‧스페인‧이집트‧프랑스‧캄보디아‧중국‧터키‧이탈리아 등 로케이션 헌팅만 19년, 아역 배우 캐스팅에 9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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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폴'에선 주인공 로이(왼쪽부터, 모험담 속 블랙 밴디트 역할을 겸했다)와 소녀 알렉산드리아(모험담 속 블랙 밴디트의 딸로도 나온다)가 입원한 병원 직원, 환자들이 로이가 들려주는 환상 속 모험담의 인물로 등장한다. 배우들이 1인 다역을 소화했다. 사진 오드

광고‧뮤직비디오를 주로 찍어온 타셈 감독이 3000만 달러(약 434억원)에 달하는 제작비 대부분을 자비로 조달해 2006년 캐나다 토론토영화제에서 초연했지만,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심기를 거스른 일로 업계에 외면당했다. (와인스타인이 사전에 영화를 보길 바랐으나 감독이 거절했고, 이에 화가 난 와인스타인은 상영 도중 극장을 나가버렸다고 한다. 와인스타인은 이후 ‘미투’ 폭로로 퇴출당했다). 2008년 감독이 자비를 들여 개봉했지만, 전세계 흥행 수입은 제작비의 10분의 1에 불과한 370만달러. 비주얼만 화려한 감독의 ‘자기만족 영화’란 비판마저 나왔다.

그런데 이 전무후무한 개성이 세계 각지에 헌신적인 추종자를 모았다. 토론토 첫 공개부터 개봉까지 물심양면 도운 영화감독 데이빗 핀처, 스파이크 존즈를 포함해서다. 유명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더 폴’은 미친 어리석음, 화려한 시각적 난교, 현실에서 미지의 영역으로의 자유낙하다.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보고 싶을 만한 영화”란 극찬을 남겼다.

1200년 전 인도 우물서 추격전…CG 안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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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폴'은 촬영 중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스턴트맨 ‘로이’가 호기심 많은 어린 환자 ‘알렉산드리아’에게 전 세계 24개국의 비경에서 펼쳐지는 다섯 무법자의 환상적인 모험을 이야기해 주는 내용이다. 사진 속 장소는 히말라야 판공 호수. 해발 4,350m 지점에 나무 한그루를 통째로 옮겨심어 주술사가 등장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사진 오드

악당 오디어스의 성으로 나온 인도 아그라 유적, 무법자 영웅들이 긴박한 추격전을 벌이는 1200년 된 인도 우물 찬드 바오리, 불타는 나무에서 주술사가 깨어나는 장면의 히말라야 판공 호수…. 부상 후 일자리도, 애인도 잃고 자살을 꿈꾸는 로이의 비극적 모험담은 한 번도 영화를 본 적 없는 어린 알렉산드리아의 머릿속을 통해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장면들로 그려진다. 실제 ‘더 폴’을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결혼 준비 자금을 다 털어 만들었다는 타셈 감독은 광고 촬영차 방문한 루마니아에서 알렉산드리아처럼 상상력이 풍부한 아역 배우 카틴카 언타루를 만나는 순간 비로소 이 영화의 이야기가 완성됐다고 돌아봤다.

“오랜 친구인 (데이빗) 핀처 덕에 많은 투자자를 만났지만 모두가 거절했죠. 당시 시나리오는 가이드에 불과했거든요. ‘주인공 아이를 찾으면 그 아이가 (촬영 상황에 맞춰)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몇 개국에서 촬영할지 나도 모르겠다’고 했더니, 돈을 대려는 데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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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폴'에서 악당 오디어스의 부하들과 추격전이 벌어지는 기하학적 계단은 9세기에 만들어진 인도의계단식 우물 찬드 바오리다. 이를 비롯해 24개국 명소들이 극중 모험담의 무대로 등장한다. 사진 오드

-CG를 전혀 안 쓴 이유는.  

“아무리 훌륭한 특수효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구식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론 CG도 좋아하지만, 촬영지들이 매우 마법 같은 공간이었고 이런 공간에 CG를 사용하면, 모자 위에 또다시 모자를 쓰는 듯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래 남을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전작도 비주얼을 강조했는데.

“아버지가 이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셔서 어릴 때부터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된 방송‧영화를 많이 봤다. 무성영화 같은 비주얼 스토리텔링에 익숙해졌지만, 전혀 비주얼적이지 않은 영화도 좋아한다. ‘더 폴’도 병원에서 두 주인공의 이야기만으로 찍을 수 있었지만, 당시 실연의 충격으로 집까지 팔아버려 돌아갈 데가 없었다. 그래서 비틀스처럼 미스터리한 전 세계 투어를 떠나게 됐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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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폴'에선 영어로 '추락(Fall)'이란 의미의 제목처럼 낙하와 추락의 이미지가 비극적 정조를 만든다. 이는 촬영 중 철로에서 말과 함께 떨어져 반신불수가 된 로이가 직업도, 연인도 잃은 후의 절망적 심정을 담은 것. 실제 큰 사고를 두차례 당했다는 타셈 감독은 '더 폴' 촬영 전 결혼을 꿈꿨던 연인에게 실연당한 아픔을 영화에 불어넣었다. 사진 오드

타셈 감독은 히말라야 기숙학교에 다니던 유년기, 자신이 본 영화 줄거리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식으로 이야기꾼 재능을 쌓았다. 영화 ‘더 셀’(2000) ‘신들의 전쟁’(2011) 등 개성 강한 비주얼을 선보여온 그는 최근작 ‘디어 자시’(2023)에선 철저히 내부 세트장에서만 촬영을 감행했다. “다소 극단적”이라 자신을 설명한 그는 “뮤직비디오도 영상 아이디어가 먼저고, 맞는 곡을 운 좋게 찾으면 만든다. 레이디 가가(팝가수)의 ‘911’(2020) 뮤직비디오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돌아봤다.

"한국은 다른 우주 같아, 한국서 영화 만들고 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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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폴'에 나온 인도 라다크. "돌처럼 냉정하다(stony-faced)"고 묘사된 사제의 얼굴이 사막과 암벽 풍경으로 바뀌는 장면이다. 사흘간 체류하며 벤치와 무대를 만들고 풍경에 얼굴 윤곽을 맞춰 촬영했다. 사진 오드

‘더 폴’이 세월이 흘러 사랑받는 비결을 “패션도 20년 뒤 레트로로 유행하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닌가” 담백하게 자평한 그는 “‘기생충’(2019) ‘올드보이’(2003)처럼 기존과 다른 걸 보여줬을 때 사람들이 열광한다. ‘더 폴’은 처음 공개됐을 땐 사람들의 기대와 달랐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 성공을 거둔 게 자랑스럽다”며 서툰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넸다. “영국 런던의 아이맥스관보다 한국 영화관에서 본 ‘더 폴’이 의도한 4K 효과가 잘 살아 좋았다”면서 “다른 문화권은 다른 행성처럼 느껴지는데 한국은 아예 다른 우주 같다. 흥미를 끄는 소재만 있다면 한국에서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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