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조숙한 철부지" "머리 좋은 멍청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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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열린책들
책을 좋아하는 아이. "빈틈없는 확실성"에 매료되어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 흥미를 느끼는 일에는 강렬한 열정을 쏟아붓는 아이. 한데 흥미를 느끼지 않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남의 감정을 읽는 발달은 느린 아이.
어린 시절의 그를 누군가는 "지진아"라고 했다. 반면 다른 누군가는 "월반을 시키라"고 했다. "조숙한 철부지"는 10대 초반에 두드러졌던 그의 반항적 언행을 두고 어머니가 종종 쓰던 말. "머리 좋은 멍청이"는 그가 하버드대에서 징계 위기에 처했을 때, 나름대로 옹호하는 시각의 교수가 서류에 쓴 표현이다. "그 당시에는 제가 정말 미숙했고, 다소 오만하기까지 했지요. 하지만 그 이후로 많이 변했어요." 이는 훗날 이 아이가 누군가에게 한 말이다.
이 아이는 올해 70세에 접어든 빌 게이츠. 이 회고록에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에 다니며 창업에 이른 과정까지를 담았다. 본격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운영한 시기나 현재의 삶과 게이츠재단 활동은 각각 두 번째, 세 번째 회고록에 쓴다는 계획이니 3부작의 첫 권인 셈. 그렇다고 앙꼬 없는 찐빵은 아니다. 고교 때 만난 두 살 손위 친구이자 동업자 폴 앨런과의 "애정과 경쟁심이 뒤섞인" 관계, 그보다 자신의 기여가 더 높다고 주장하며 유리한 지분 비율을 관철한 일,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의 첫 만남도 등장한다. 처음 큰돈을 손에 쥐고 중고 포르쉐911을 산 일도 겸연쩍게 돌이킨다.
수학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그의 관심도 상당히 일찍부터 엿볼 수 있는데, 뜻밖에 한때 정치와 법대 진학을 생각했던 일도 나온다. 고교 시절 교과서를 두 권씩 사서 학교와 집에 한 권씩 놓고 다닌 일도 눈에 띈다. 교과서를 가져가 집에서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특히 쉽게 돌이키기 힘든 경험이었을 친구의 죽음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고교 시절 등반 사고로 숨진 켄트는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 하지만 켄트 어머니를 보는 순간, 슬픔의 깊이를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고 돌이켰다.
무엇보다 부모 입장에서 결코 키우기 쉬운 아이가 아니었을 모습을 상당히 솔직하게 드러낸다. 관련된 일도 여럿 나오지만 "만약 내가 오늘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면, 아마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고 책에 썼다. 자신의 성장기 부모에게는 "아들이 왜 특정 프로젝트에 집착하고, 사회적 신호를 포착하지 못하며, 때로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무례하거나 부적절하게 구는지,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는 지침서나 교재가 없었다"면서다.
달리 말하면 이 책은 어린 빌 게이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금의 빌 게이츠 시각이 투영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던 사회적 흐름만 아니라 당시 미처 인식하지 못했을 일도 담아낸다. 그의 성공은 개인용 컴퓨터 및 마이크로칩의 등장과 맞물렸고, 명문 사립학교라도 고교생들이 엄청난 고가품이었던 컴퓨터에 접근하고 무료로 쓸 수 있었던 데는 지역 사회의 어른을 비롯한 여러 도움과 기회가 있었다. 그의 제한된 흥미에 적격인 일을 맡겨준 사서를 비롯해 교사와 학교의 역할도 부각된다.
특히 카드 게임의 고수였던 외할머니는 "두뇌 훈련"과 더불어 복잡해 보여도 "세상은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깨달음을 안겨준 인물, 나아가 부와 성공에 대한 시각에 영향을 준 인물로 그려진다.
성장기의 진통에도 그가 여유로운 가정에서 나고 자란 건 분명하다.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어머니는 사회적 활동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능숙하고 적극적이었다. 단지 '교육열'이라고 단순화할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은 이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편이 좋겠다. 어릴 때도 알았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빌 게이츠는 부유한 미국에서 백인 남성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일종의 출생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책에 썼다.
이 책은 유려한 전개, 생생하고 세세한 묘사도 두드러진다. 암만 머리 좋은 사람도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을 터. 그 자신의 기억과는 다른 학교 성적표를 비롯한 여러 자료 조사, 그리고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의 인터뷰 같은 준비가 뒷받침됐음이 책 곳곳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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