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 원로들 “정치적 안정 없인 경제발전 못해…美 기업 동맹 구축해야”

본문

17393518915921.jpg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원로 초청 간담회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 회장,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경록 기자

“이 기회에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분야에서 (한·미) 기업 차원의 동맹관계에 가까운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2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 경제 원로에게 묻다’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를 강화하기 위해 기업이 주도하는 협력 관계가 중요하다”면서다.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내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에 앞장선 그는 “최근 한국 경제는 여러 기저질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간담회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경제 원로들과 함께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만든 자리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국무총리, 이 전 부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석했다. 트럼프발 무역 전쟁과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대내외적 경제 위기를 맞은 가운데 노무현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역대 정부 정책 사령탑이 머리를 맞댄 것이다. 이들은 정국 안정과 경제 최우선 정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 회장은 우리 경제에 닥친 ‘4개의 폭풍’으로 무역 전쟁과 인플레이션, 인공지능(AI) 경쟁, 정치적 불확실성을 꼽았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경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의사결정이 모여서 대격변기를 잘 헤쳐 나가야 한다”라며 “열심히 듣고 공부해서 기업이 실천해야 할 부분은 과감하게 시작하고, 힘을 함께 모아야 할 부분은 국회와 정부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17393518917502.jpg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원로 초청 간담회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과거 IMF 외환위기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 경제를 이끌었던 원로들은 현재 한국 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놓였다는 점에 공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철강에 관세 25%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자동차·반도체 등 한국의 핵심 수출 품목도 겨냥하고 있다. 윤 전 장관은 “반도체는 지금 국가 대항전”이라며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지난 몇 년간 대만의 TSMC에 비해 뒤지고 있는데, 수출의 20%가 넘는 반도체 산업이 무너지면 우리 산업에 도대체 어떤 결과가 오겠느냐”고 우려했다.

이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빠른 정국 안정을 1순위로 꼽았다. 불확실성 제거와 예측 가능한 정부 정책, 정치 복원을 통한 법과 제도의 적기 입법화 같은 것들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유 전 부총리는 “금리·환율 등 거시경제 변수의 변동을 면밀히 살피고, 경제정책 운용에는 흔들림이 없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내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트럼프의 등장으로 한국이 그간 혜택을 받아왔던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주의가 퇴조하고, 여기에 정치 혼란까지 덮치며 우리 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놓였다”며 “정치안정 없이 경제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정국이 빠르게 안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739351891914.jpg

김경진 기자

트럼프 시대 대응전략에 대한 조언도 쏟아졌다. 정 전 국회의장은 “트럼프 2기 보호무역 체제는 수출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에는 분명 악재이지만,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다”며 “우리의 강점 분야를 더욱 키워서 미국 등 각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미·중 관계가 정립될 때까지 면밀하게 관찰하며 협상에 유리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토론에서는 보조금 정책과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들이 오갔다. 정 전 국회의장은 “게임 체인저인 인공지능(AI)에는 엄청난 투자가 소요되는데, 정부가 보조금을 계속 금지할 것인지 아니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라며 “AI 2등 국가에서 1등 국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엔 기업 간의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국가 대항전이 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유 전 부총리는 “규제의 90%가 법인데, 정치권이 너무 여론에만 휘둘려 규제를 자꾸 만드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17393518920756.jpg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이헌재 전 부총리, 정세균 전 국회의장, 윤증현 전 장관, 유일호 전 부총리(왼쪽부터)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원로 초청 간담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원로들은 금융 선진화와 내수활성화, 서비스 산업 육성 등 산업구조 재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이 전 부총리는 “정부 주도 패러다임을 민간주도 신성장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라며 “정부가 나서서 이끌다 보니 구조조정이나 산업 고도화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어 첨단기술 발전을 위해 ‘산학연 혁신센터’ 등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2,087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