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계엄날 달러 사던 30대 회사원, 왜 사표 내고 극렬 유튜버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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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한밤중 초현실적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시각, 서울에 사는 36세 이모씨는 평소처럼 집에서 미국 달러를 사 모으고 있었다. 중소 입시컨설팅 업체에서 영상 제작 일을 하던 그는 자산 증식에 관심이 많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30대 기혼 남성이다. 그러나 비상계엄은 이씨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동기에 동조하는 ‘탄핵 반대파’다. 반면 회사 대표는 노골적으로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시쳇말로 ‘김어준 빠(열혈 지지자)’였다. “(체포영장에 협조 안 하면) 총살해야지” 등 격한 발언을 할 정도로 ‘탄핵 찬성파’다.
2030 극렬 보수 유튜버, 그들은 누구인가
정치적 견해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심하던 이씨는 지난달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담긴 음악을 만들어 올렸다. 회사 대표가 곱게 볼 리 없었다. 지난달 사표를 던졌다. 이제 그는 전업 유튜버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탄핵 반대 집회에 활용할 각종 음원을 만들어 올리는 ‘디지털 전사’로 돌변했다. 이씨는 기자에게 “석동현 변호사(윤 대통령 변호인)에게 ‘우리를 이용하시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 강화에 내가 활용되고 싶다”고 했다. 지난 13일 국민변호인단 출범식 연단에 선 이씨는 “대통령을 지킨다” “자유 대한민국”을 외쳤다.
비상계엄 이후 탄핵 반대 여론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씨와 같은 2030 신흥 강성 보수 유튜버의 부상이 이런 흐름을 주도한다. 생업 타격까지 마다치 않으며 신념을 ‘샤우팅’하고 광장으로 나선 이들을 움직이는 기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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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드럼통타이거가 지난 3일 중앙일보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채널 계정을 보여줬다. 얼굴 노출을 꺼린 그는 자신이 '드럼통타이거'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태윤 기자
현실 경제 분노 “위선에 속지 않겠다”
취재팀과 만난 2030 극렬 보수 유튜버들은 좌파의 현실 정치와 경제에 불만부터 토로했다. ‘25만원 전 국민 지원금’은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고 다 같이 못살게 하는 공산주의적·반민주적 공약이라는 주장이다. 부동산 재테크 오프라인 강의로 업계에서 알려진 유튜버 김모씨는 취재팀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나라가 공산화되면 사유재산은 휴짓조각이 된다”고 했다. 김씨는 탄핵반대집회에 무료 어묵차 지원을 하고 있다.
좌파의 현실 정치가 위선이었다는 실망감도 작용했다. 자녀 학력과 재산 증식을 위해 위·편법을 마다치 않은 조국(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건이 대표적이다. 대중은 좌파의 위선에 실망했지만, 민주당 등 야권은 자기 성찰이 없었다. “민주주의 훈련이 안 된, 지체된 의식을 가진 친구들이 자유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박구용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 같은 발언은 이런 분노의 불에 기름을 부었다. 유튜버 김씨는 “계엄 이후 경제가 후퇴하고 개인의 피해가 커지지만 반국가세력을 솎아내고 판을 뒤집으려면 어쩔 수 없는 출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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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를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각종 의혹을 무분별하게 퍼뜨리는 콘텐트들이 유튜브에 난무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채널 캡처
“내 밥그릇 빼앗긴다” 혐중론 확산
동북공정,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코로나19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밑바탕에는 반중 정서가 강하게 깔렸다. 최근에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기술 개발에서도 한국과 경쟁하면서 실존적 위기감이 더 커졌다. 내 손에 쥐어진 것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65만 명(2023년 법무부 기준) 화교가 비난의 주 대상이다.
화교의 부동산 양도세·취득세·상속제 면제와 입시 혜택을 예로 들며 특혜와 상대적 불평등성을 꼬집기도 한다. 화교 특혜론은 화교의 상속엔 한국법이 아닌 중국법을 적용하는데, 중국·홍콩· 대만은 상속세 및 증여세가 없기에 내지 않는다는 실상과 다른 ‘가짜뉴스’가 골자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은 12일 자신의 SNS에 “상속세 및 증여세법 59조에서 지칭한 ‘외국 증여재산’은 외국인이 가진 한국 자산이 아니라 한국인이 가진 외국 자산을 의미한다”며 “국내 상속세법 등은 외국 법령에 따라 (현지에) 상속세를 낼 경우 우리나라에선 그만큼 빼 준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설명에도 화교 특혜론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조귀동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중산층 진입과 유지가 힘들어진 상황에 대중 무역수지가 한·중 수교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는 등 중국이 내 밥그릇을 위협하는 실존적 위기로 다가왔다”며“마치 미국 사회의 이민자에 대한 불만과 비슷한 반중 혐오 감정이 화교에 투영됐고, 이런 게 우파 진영에서 강력한 정치적 언어로 결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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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 제2차 전원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의원들은 탄핵 반대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안창호 인권위원장을 접견했다. 인권위 출입구는 강성 보수 유튜버 등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됐다. 뉴시스
극단 유튜브, 장사가 된다
극렬 유튜버들 사이에는 분노와 혐오를 팔아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이들도 적잖다. 논리는 없고 욕설 일변도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은 탄핵 반대 집회 곳곳에서 심심찮게 목격된다. 격투기 선수 출신 유튜버 J는 평소 노숙인이나 노인에게 시비를 거는 영상을 올리며 조회 수 올리기에 열을 올렸다. 12·3 비상계엄 후엔 ‘애국 청년’ ‘우파 전사’로 돌변했고, 탄핵 반대 집회에 단골이다. 유튜버 K는 계엄사태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시장 전망에 관한 콘텐트를 주로 올렸다. 때때로 신규 구독자 유입이 0명에 불과할 정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달 5일 ‘자유주의자라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좌파 참교육 영상’이란 콘텐트를 올린 직후 신규 구독자가 하루 만에 5500명으로 증가했다. 영상에서 K는 “맨날 지원금 내놓으라 하는 그 사람들이 적폐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이후 ‘한국은 거대한 차이나타운이 돼 가고 있다’ 식의 영상으로 자신의 채널을 도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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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2030 강성 유튜버들은 자신이 작사 ·작곡한 음악을 전파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디지털 무장
2030 극렬 보수 유튜버가 정치적 의견을 전파하고 공유하는 방식은 이전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계몽령’이란 프레젠테이션(PPT) 파일을 만들어 구글의 문서 공유 서비스 독스(Docs)를 활용해 온라인에 적극적으로 배포한다. 프리랜서 영상 편집자인 전라도 광주 출신의 한 20대 여성 유튜버는 계엄령 이후 왜 자신이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이른바 진보'에서 보수가 됐는지 경험담을 풀어낸 영상을 제작해 퍼뜨렸는데, 조회 수 80만이 넘었다. 이후 부정선거론 등 논쟁적 사안에 관해 수집한 자료와 그래픽, 내레이션을 조합한 영상을 만들어 퍼나르고 있다. 채널 개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5만 이상의 구독자를 유치했다.
계엄 이후 우파 유튜브 생태계에는 새로운 현상이 눈에 띈다. 온라인 유머 게시판에서 회자하는 ‘밈’(meme·유행하고 있는 이미지나 콘텐트)을 끌어와 AI(인공지능)를 활용, ‘사법 카르텔’ ‘좌파 삼촌 필승법’ 등의 힙합·록 버전의 음악을 만드는 식이다. FLO(플로), 멜론 등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업로드를 시도한 경우도 있다. 유튜버 드럼통타이거 이런 활동을 “좌파 문화 선동의 답습”이라고 말한다. 그는 “노래가 제일 쉽지 않나. 저들(좌파)은 오래전부터 이미 노래와 같은 문화의 힘으로 사상의 씨앗을 심어왔다. 같은 방법을 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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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SNS에 '계몽자료'라는 이름으로 돌고 있는 프리젠테이션 파일들. 온라인 캡처
윤 대통령, 극렬 유튜버에 손짓
2030 강성 보수 유튜버의 활동이 극렬해지자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여론전에서 ‘청년’을 부각하고 있다. 이들과 윤 대통령의 메시지 동조화 현상도 읽힌다. 지난 13일 국민변호인단 출범식 일주일 전 취재팀과 만난 유튜버 이씨는 “(내가 만든 유튜브 콘텐트를 보고) 이재명의 민주당을 제대로 알게 됐고, 반국가 세력의 실체를 알게 됐다는 이들이 많아진 것만 해도 고무적 성과”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친필 편지에서 “최근 많은 국민과 청년들이 우리나라의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주권자로서 권리와 책임의식을 가지게 된 것을 보면, 국민들께 국가위기 상황을 알리고 호소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윤 대통령의 발언은 ‘나라를 구하고 있다’는 이들의 영웅 심리를 자극한다. 탄핵 국면 이후에도 윤 대통령과 유튜버 간 밀착은 끝나지 않을 조짐이다. 온라인상에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시 ‘제2 건국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이들이 적잖다. 법치와 삼권분립 등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부정하는 위험한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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