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팝업 천국' 성수동 지겹다면…요즘 뜨는 그 옆 골목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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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를 설명하고, 태도와 세계관을 녹여내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에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좋은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하죠.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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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연무장길 전경. 사진은 대림창고가 ‘무신사스토어 성수@대림창고’로 탈바꿈한 모습. 무신사
‘또 성수동이야?’
요즘 뜬다는 브랜드 팝업이나 가볼 만한 전시, 맛집으로 입소문 난 곳들을 살펴보면 어김없이 이곳, 성수가 등장합니다. 한때 수제화 공장과 공업사, 인쇄소가 즐비했던 동네였지만 이제는 젊은이들로 가득 찬 ‘힙(hip)’한 동네로 변모하며 가장 주목받는 트렌드의 중심지가 됐어요. 부동산 전망도 좋아 ‘제2의 강남’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요즘, 성수동은 또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팝업스토어보다는 플래그십스토어가 뜨고, 옆으로 옆으로 상권이 확장하는 식으로요. 이번 비크닉에서는 성수동 상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어요.
‘서울 대표 공업 지역’이 국내외 2030 핫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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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성수동 상권 주요 스팟. 박현아 디자이너
행정구역상 성수동은 서울숲부터 뚝섬·송정동·성수역까지 다소 광범위한 지역을 칭하지만, 핵심 구역은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인근 ‘연무장길’이에요. SNS 인증샷 성지로 MZ세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골목이죠. 지난해 9월 영국 여행 잡지 ‘타임아웃’이 성수동을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38곳’ 중 4위에 선정하는데 연무장길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준공업지역이었어요. 그러다 지난 2012년, 젊은 예술가와 비영리단체, 사회적 기업이 잇달아 둥지를 틀면서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빈 공장과 창고에서는 각종 전시회와 패션쇼가 열렸어요. 서울숲길의 낡은 주택들도 개성 강한 식당과 카페,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 등으로 바뀌었고요. 최근 2~3년 사이엔 공장이나 창고는 대부분 사라지고 팝업스토어와 편집숍, 플래그십스토어가 대거 모인 공간으로 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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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연무장길 전경. 김세린 기자
한국 관광객들이 ‘서울 관광 필수 코스’에 성수동을 넣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어요. 지난해 1월~4월 성수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총 21만명. 2019년 동기 대비 5배나 뛰었습니다(한국관광공사데이터랩). 올해는 무신사·마뗑킴 등 성수동 K-패션 스토어에 방문한 외국인 비율이 평균 50%가 훌쩍 넘는데, 특히 일본·중국·대만 등 아시아권 2030 여성들이 체형 상 한국 의류가 잘 맞아 지갑을 연대요(각 사 집계).
성수의 핵심, ‘연무장길’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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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서연무장길에 들어선 뉴발란스 성수 플래그십스토어. 이랜드 뉴발란스
동네가 뜨면서 연무장길이라는 명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됐어요. 성수역에서 뚝섬역 방향으로 뻗어가는 골목을 '서연무장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죠. 지난 2022년 럭셔리 브랜드 디올이 대규모 매장 ‘디올 성수’를 낸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어요. 디올 성수는 허름한 골목과는 다르게 고풍스럽고 화려한 유리 온실을 연상시키는 외관으로 단숨에 인증샷 명소가 됐죠. 화제성을 끌어오더니, 기존 공장 건축물의 골조를 그대로 노출하거나 깨어진 콘크리트를 그대로 방치한 채 카페와 식당으로 재탄생한 곳이 주변에 들어섰어요. 최근까지도 굵직한 브랜드가 서연무장길에 문을 두드려요. 지난해 10월 국내 최대 규모 ‘뉴발란스 플래그십 스토어’에 이어, 올해 1월 ‘프라다 뷰티’까지 둥지를 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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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팝업스토어 성지'가 된 성수동 연무장길. 박현아 디자이너
서연무장길은 팝업스토어를 위한 단기 임대형 공간이 주를 이뤄요. 이색 경험과 SNS 공유를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 수요 확보 위한 ‘팝업 마케팅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인데요, 지난해 열린 총 1431개 팝업스토어 중 지역별 팝업스토어 오픈 비중은 성동구(성수)가 28.53%로 1위를 차지했어요. 더현대, IFC몰 등 '제2의 팝업 성지’로 불리는 영등포구가 13.92%로 2위를 차지한 것을 고려하면 격차를 보입니다(스위트스팟, ‘2024 팝업스토어 트렌드 총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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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 스토어 대림창고에서 시즌별로 열리는 팝업. 주제와 조형물도 매번 바뀐다. 김세린 기자
서연무장길 공간 특성상 통창으로 된 외관, 컨테이너형 건물 등이 많기 때문에 판매형·체험형 팝업스토어가 주를 이룬다는 점도 특징이에요. 지난해 열린 팝업스토어 사례는 판매형(49.27%), 체험형(34.95%), 전시형(15.78%) 순으로 많았어요. 무신사 등 패션 브랜드가 쇼룸 형태로 공간을 활용했고, 농심, 선양소주 등 F&B 브랜드는 체험형 팝업을 통해 직관적으로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테마 및 포토존 구성했어요.
상권이 ‘동연무장길’로 뻗어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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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연무장길 전경. 눈 오는 날에도 2030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김세린 기자
서연무장길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최근에는 ‘동연무장길’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어요. 성수역을 기준으로 서울숲·뚝섬과 반대되는 건국대 방향 쪽이에요. 이 골목은 채워지는 콘텐트도 차이가 나요. 팝업이 잦은 서연무장길과 달리 통임대가 가능한 건물이 있다 보니 국내외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의 입점 문의가 이어지고 있대요. 브랜드 콘셉트와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려면 아무래도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임대료도 서연무장길보다 저렴한 편에 속하고요.
실제 지난해 5월 미국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키스’와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맞은 한섬에 이어, 해외 Z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패션 브랜드 ‘브랜디멜빌’이 첫 국내 매장을 동연무장길에 선보였어요. 2030에 인기 있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밀로 아카이브’도 이달 이곳에 안착했고요. 다음 달엔 ‘999 휴머니티’에 이어 ‘로우 클래식’ 등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의 매장도 이웃이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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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에 최초로 들어와 화제가 된 '브랜디멜빌' 전경. 컨테이너형 건물을 개조한 공간. 김세린 기자
이런 동연무장길 확장에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도 있어요.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저서『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에서 “무신사가 성수동을 중심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 문화적 도시 재생과 지역 상권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했어요. 실제로 무신사는 동연무장길이 주목받기 이전인 2022년, 아예 본사 위치를 강남에서 성수로 옮긴 데 이어, 오피스·오프라인 매장 및 입점 브랜드의 팝업을 지원하는 복합 문화공간 운영을 늘려왔어요.
‘젠트리피케이션’ 가속화…앞으로의 성수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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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대관 현수막이 크게 내걸린 공인중개사무소, 공실 건물 외관. 김세린 기자
앞으로 성수동은 어떻게 변할까요. 이제는 패션·뷰티처럼 트렌드에 민감한 업종이 아니라도 성수에 둥지를 트는 일이 생겨요. 게임회사 크래프톤의 신사옥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호재로 작용하면서 임대료는 꾸준히 상승할 전망이에요. 당연히 오랜 기간 터를 지켜온 이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지속하고 있죠. 선종필 뉴스상가레이다 대표는 “성수동이 자칫하면 가로수길과 홍대입구, 합정동 상권이 될 수 있다”며 “미개발지 공사가 진행 중이고 낙후된 건물이 탈바꿈하는 등 개발이익으로 전망이 좋지만, 확장세가 더뎌질 수 있다”고 전망했어요.
또 일부 브랜드 사이에서 높아진 임대료를 피해 성수를 벗어나 팝업을 여는 시도도 포착되고 있어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많이 몰리는 성수에서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되기보단, 자신들의 제품과 타깃 고객의 성향에 맞는 곳에서 ‘온리원(only one)’이 되고자 하는 움직임이죠. 선 대표는 “성수동 성장이 정체되면 팝업으로 성수에서 마케팅을 펼치던 기업들도 대책을 모색할 수 있고, 팝업용 단기 임대 수요가 끊겨 급속도로 공실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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