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탈퇴 도미노냐 확산 기회냐…트럼프에 울고웃는 '일대일로'[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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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 취임 선서 행사 직전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왼쪽엔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표기한 지도, 오른쪽엔 아메리카 대륙이 그려진 미 해병대 깃발이 전시돼 있다. AFP=연합뉴스

#1.“이 협정이 수년간 파나마에 뭘 가져다줬나.”
지난 6일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BRI,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내린 결정”이라 강조했지만, 나흘 전 파나마에서 물리노를 만났던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트럼프 리더십의 승리”라고 말했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중국이 장악한 파나마 운하를 돌려받아야 한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통했다는 자평이다.

#2.“콜롬비아·중국 관계의 큰 진전.”
루이스 레예스 콜롬비아 상공관광부 장관이 지난 8일 부에나벤투라~상하이 해상 무역로 개설 소식을 전하며 한 말이다. 대미 무역 의존도가 높은 대표적 중남미 국가인 콜롬비아는 일대일로에도 참여하지 않아 왔다. 개설에 합의한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미국 이외 국가로의 수출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50% 관세 부과’ 위협에 “미국 불법 이민자 송환에 협력하겠다”(지난달 26일)고 밝힌 직후다.

트럼프의 귀환 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진두 지휘하는 일대일로에 격랑이 불고 있다. 중남미 일대일로의 핵심 거점인 파나마가 탈퇴를 선언하면서다. 트럼프의 ‘중국 견제’ 공세에 탈(脫) 일대일로 움직임이 확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면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 외교의 틈을 파고든 중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거란 예측도 만만치 않다.

시진핑 천군만마 파나마, 브릭시트 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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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2월 파나마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셋째)이 부인 펑리위안(오른쪽에서 둘째) 여사와 함께 파나마운하를 찾아 운하를 통과하는 중국 상선 선장과 무전기 통화를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에 파나마는 특별하다. 2017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뒤 이듬해 중남미 국가 최초로 일대일로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운하를 가진 파나마의 일대일로 동참은 중국에 ‘천군만마’였다. 시진핑도 같은 해 파나마 운하를 직접 둘러보며 공을 들였다.

그렇기에 파나마의 일대일로 결별을 뜻하는 ‘브릭시트(BRI+exit)’는 중국에 충격이었다. 중국 외교부가 7일 주중 파나마 대사를 불러 항의하고, 린젠 대변인이 “미국이 압박과 협박으로 일대일로 협력에 먹칠하고 파괴했다”고 쏘아붙인 이유다.

파나마발 일대일로 탈퇴 도미노 벌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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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파나마를 교두보로 중남미 너머 대서양으로 뻗어 나가려던 시진핑의 구상이 이곳을 ‘미국의 앞마당’이라 여기는 트럼프에게 막힌 셈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트럼프는 파나마에 대한 중국의 입김 강화가 미국의 목줄을 죄는 군사안보적 위험이라 여긴다”며 “파나마도 경제 대신 미국의 무력 위협 해결을 우선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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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트럼프의 압박으로 ‘일대일로 탈퇴 도미노’가 벌어질 거란 관측도 나온다. 왕이웨이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트럼프는 중국과 연결고리가 약하고 미국 자본에 통제되는 국가를 노린다”고 말했다. 신흥 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ICS)’ 회원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는 일대일로의 빈자리를 미국이 채우겠다는 야심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3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그는 “인도~이스라엘~이탈리아를 거쳐 미국까지 항만·철도·해저케이블로 연결할 것”이라며 “(무역로 건설에) 이미 많은 돈을 썼지만, (경쟁국보다) 앞서고 리더 지위 유지를 위해 더 많은 돈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9월 일대일로 무력화를 위해 미국 주도로 출범한 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IMEC) 건설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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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미국 해외원조 끊기에 일대일로 반사이익 

하지만 “외국에 돈 퍼주지 말자”는 트럼프의 외침이 중국에 기회를 줄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는 정부효율부(DOGE) 수장 일론 머스크를 앞세워 미 국제개발처(USAID) 폐지에 나서고 있다. USAID 등을 통한 해외 원조를 국고 낭비로 여겨서다.

USAID는 냉전 시절부터 60년 넘게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뒷받침해 온 기구다. 미국 스스로 글로벌 소프트 파워의 왕좌에서 내려온다면 빈자리는 일대일로가 메울 거란 예측이 나온다. 제레미 찬 유라시아그룹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최근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은 나라로 여겨진다”며 “USAID 폐지 가능성에 중국은 덩달아 책임 있는 글로벌 이해관계자 이미지를 얻었다”고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말했다.

미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공화당 소속 로저 위커 상원 군사위원장은 “USAID는 일대일로에 맞서는 우리만의 방식이었다”며 트럼프의 구조조정 방침을 비판했다. 중국도 반색하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에 비판적이던 BBC가 최근 우호적 보도를 하는 건 미국이 BBC 산하 원조 기구 재정 지원을 끊은 것과 연관될 수 있다”고 전했다.

서반구 패권주의 빈자리 노리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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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로 독트린, 트럼프의 서반구를 위한 비전’이란 제목이 달린 미국 뉴욕포스트 1월 8일자 1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봉으로 북미대륙을 가리키면서 캐나다를 51번째 주, 그린란드를 우리 영토,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가(PANA-MAGA) 운하라고 표기했다. 트럼프는 이 신문 1면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사진 뉴욕포스트 캡처

트럼프가 이른바 ‘돈로(도널드+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 독트린’을 바탕으로 파나마 등 서반구(아메리카 대륙 등 대서양 서쪽 일대) 패권에 집중한다는 점도 변수다. 트럼프의 관심이 적은 지역에선 일대일로가 파고들 수 있단 얘기여서다. 찬 연구원은 “중국 일대일로 투자 방점이 아프리카·동남아시아로 옮겨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시진핑은 지난 6일 방중한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와 태국~라오스~중국 고속철도 건설 사업을 논의했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으로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을 잇는 철도망 확장에 힘쓰고 있다.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는 “USAID가 폐지되면 경제적 어려움이 큰 방글라데시가 미국 대신 중국과 접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대일로 아니어도 돼” 유연해진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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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중국과 브라질 간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회담 후 악수하고 있다. 양국은 ‘일대일로 시너지 의정서’ 등 37개 분야 협약을 체결했다. 신화=연합뉴스

‘부채의 덫’ 비판에 시달렸던 중국은 최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태도로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중심 개발도상국)와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이른바 일대일로의 ‘작고 아름다운(小而美) 프로젝트’ 변신이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일대일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시진핑이 한 달 뒤 가진 룰라와의 정상회담에서 대규모 투자 협력을 약속한 게 대표적이다. 일대일로와 브라질 개발 프로그램 간 시너지를 모색하는 협정만 추가했다. 트럼프 눈치를 보면서도 중국과 경제 협력을 원하는 브라질 입맛에 맞춰준 것이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중국은 일대일로를 협력 국가의 다양한 요구에 유연하게 변하는 플랫폼으로 규정하는 전략적 접근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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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강준영 센터장은 “중국은 ‘미국 우선주의’ 드라이브가 강할수록 자신들의 외교 공간이 생긴다는 걸 트럼프 1기 때 학습했다”며 “트럼프가 관세 등 위협 전략에만 집중할 경우 미국이 텃밭이라 여기는 중남미뿐 아니라 유럽연합(EU) 등에서도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착할 국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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