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강남 손대손, 대전 손손"…노상 코인 거래 범죄에도 기승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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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더(USDT)를 이용한 자금 세탁을 표현한 이미지. 일러스트 챗GPT.

지난 10일 오후 5시 20분쯤 서울 서초동 노상에서 5억원 상당의 가상화폐 대면 거래가 이뤄졌다. 대상은 미화 1달러(USD)에 1대 1로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 코인(USDT)’이었다. 그런데 코인 판매자가 전자지갑으로 코인을 전송하자마자 30대 매수자 두 명은 거래대금을 주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고 바로 달아나 버렸다. 서초경찰서는 이튿날 현장에서 달아난 2명과 공범 2명 등 4명을 사기 혐의로 체포해 수사 중이다.

지난해부터 서울 강남 일대에서 코인 면대면 거래를 미끼로 현금을 갈취하는 절도·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면대면 거래는 정식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거래 당사자가 직접 만나 사인 간 거래하는 방식이다. 개인 지갑으로 코인을 직접 송금받고 주로 현찰 등으로 대금을 지급한다. 거래소를 이용할 경우 0.05%~0.2%인 수수료를 피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매수·매도 쌍방이 거액을 거래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 등 돈세탁 목적으로도 활용된다.

이 때문에 현장 코인 탈취나 대금 탈취 등 대면 거래 범죄도 늘고 있다. 지난해 3월 강남구 역삼동 일대에서 테더 코인을 거래하자며 불러내 현금 1억원을 빼앗아 달아난 일당 9명이 특수강도 혐의로 체포됐고, 이어 4월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각각 3억, 5억, 5억5000만원 규모의 현금을 강도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달 16일 낮 제주시 한 호텔 객실에서 현금 10억원 돈가방을 보여주며 테더 코인을 사겠다며 여성 환전상을 속인 뒤 8억4000만원 코인만 챙겨 달아난 중국인 6명이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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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기준 접속자 4635명인 텔레그램 장외거래방에 코인 대면 거래, 일명 '손손 거래' 대상자를 구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텔레그램 캡처.

1년 새 수십억 원대 피해가 속출하지만 텔레그램에선 코인 직거래 광고 글이 빈번히 올라오고 있다. 지난 23일 접속자 4600명 이상의 텔레그램 장외거래 채팅방을 보니 “삽니다, 테더, 가격 조율, 2900개, 강남 손대손” 등의 글이 하루 한 번은 넘게 올라왔다. ‘손대손’이나 ‘손손’은 대면 거래를 뜻하는 은어다.

전문가들은 순수한 거래 목적이면 거래소가 아닌 대면 거래를 택할 이유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테더는 2023년 말부터 코인원, 빗썸 등 국내 대형 거래소에도 상장해 손쉽게 구매가 가능하다. 다만 거래소에선 ‘트래블룰’에 따라 가상자산을 100만원 이상 이전하면 송·수신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억대 거래가 갑작스레 진행되면 이상거래로 탐지해 금융당국에서 조사에 나설 수 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는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대면으로 거래하려는 이유는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대면 거래 목적은 불법 자금 세탁”고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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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21일 강남구 역삼동에서 테더코인 거래를 미끼로 1억원을 강취한 일당이 피해자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담긴 인근 건물 폐쇄회로(CC)TV 화면. 이보람 기자.

실제로 지난해 3월~4월 강남 일대서 발생한 테더 갈취 사건 피해금액 전부 자금 출처가 명확치 않아 보이스피싱이나 텔레그램 리딩방 사기 업체 등의 자금 세탁 시도로 보고 피해금을 돌려주지 않고 검찰로 넘겼다.

지난해 2월 19일 인천 송림동에서 테더 코인을 싸게 팔겠다며 현금 10억원을 훔친 사건 역시 피해 금액을 되돌려 주지 않았다. 검찰은 해당 피해 금액이 보이스피싱 등 범행 관련 세탁 자금인 정황이 있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고, 인천지법 재판부는 이를 고려해 지난 9월 피해자의 압수물 환부 요청을 거부했다.

대면 거래가 ‘규제 회색 지대’에 놓여있어 자금 세탁을 원천적으로 막을 방안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특정금융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등은 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에게만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규정하고, P2P, 개인 간 거래는 추적이 불가능하다.

데이터 분석기업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불법 가상자산 범죄 규모는 75조원에 달한다. 강현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불법 자금 세탁 용도라 하더라도 개인 간 거래를 현행 규제로 막기는 역부족”이라며 “불법 자금으로 취득한 테더를 나중에 거래소를 통해 현금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개인 간 거래에 쓰이는 가상화폐 지갑은 무기명 통장이나 마찬가지라 불법 자금을 거래해도 확인이 어렵다”며 “개인 지갑 또한 중앙화 거래소처럼 KYC(고객신원확인) 절차를 의무화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사한 수법의 범죄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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