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메르츠 독일총리 유력, 메르켈의 23년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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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선 결과, 차기 총리로 유력해진 프리드리히 메르츠(70) 기독민주당 대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메르츠 대표는 16년간(2005~2021년) 총리를 지낸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는 오랜 당내 라이벌 관계였다. 메르츠는 한때 정계를 떠나 금융 전문가로 성공하면서 억만장자로도 유명세를 치렀다. 그가 취임하면 “개인 전용기를 보유한 최초의 독일 총리”란 타이틀을 달게 된다. 또 첫 서독 총리였던 콘라트 아데나워(취임 당시 73세) 이후 가장 고령인 총리가 된다.
24일(현지시간) 독일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치른 총선의 개표 결과 중도우파인 기민·기사 연합이 28.6%,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 20.8%, 중도좌파인 집권 사회민주당 16.4%, 환경 정당인 녹색당 11.6% 등 순으로 집계됐다. 선거 열기가 고조되면서 최종 투표율은 82.5%로, 1987년 총선(84.3%)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로써 기민·기사 연합은 2021년 총선에서 내준 정권을 3년여 만에 탈환하게 됐다. 중앙 무대에서 배척받던 독일대안당 역시 지난 총선의 두 배에 달하는 표를 얻는 기염을 토했다. 경제 실정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던 사민당은 “역사적인 참패”(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란 성적표를 받았다.
메르츠는 1955년 서독 브릴론의 보수적인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지방 판사로 근무한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메르츠도 변호사 출신이고, 4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함께한 아내 샬롯도 판사다.
독일 이끌 메르츠, 미국 100번 넘게 방문…롤모델은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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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메르츠 기민당 대표(왼쪽 사진)와 2당으로 약진한 독일대안당의 바이델 공동대표. [AP·AFP=연합뉴스]
그는 고교 시절인 72년 기민당의 청년 조직에 들어갔다. 이후 군 복무를 마친 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89년 유럽의회 의원을 거쳐 94년 연방하원에 첫 당선됐다. 2000년 기민·기사 연합의 원내대표를 맡으며 유력 정치인으로 급부상했지만, 2002년 총선 이후 당 대표였던 메르켈이 그의 자리(원내대표)까지 겸직하면서 메르켈과 악연이 시작됐다.
2009년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에는 법률가와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두 대의 개인 전용기를 마련할 정도로 큰 부를 쌓았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약 1200만 유로(약 179억원)로 파악됐다. 그런데도 메르츠는 자신을 “상류 중산층”이라고 소개해 비판에 직면한 적도 있다.
메르츠는 2018년과 2021년 당 대표직에 연이어 도전했으나 메르켈이 지원한 후보들에게 번번이 밀렸다. 결국 메르켈이 정계를 떠난 뒤인 2021년 12월 삼수 끝에 당 대표에 올랐다. 메르켈은 지난해 11월 출간한 자서전에서 메르츠에 대해 “그가 권력을 의식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면서도 “하지만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우리 둘 다 상사가 되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이와 관련, BBC는 “옛 공산권 동독 출신의 절제된 양자 화학자인 메르켈과 서독 출신의 변호사 메르츠는 눈을 마주친 적이 거의 없다”고 소개했다.
메르츠는 온건파인 메르켈과 달리 독일대안당 유권자들을 흡수하기 위해 당의 우경화를 주도해 왔다. 2015년 메르켈이 주도한 포용적 난민 정책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비판했다. 그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메르켈 정부 때 결정된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하고, 올라프 숄츠 정부가 지난해 합법화한 기호용 대마초도 다시 금지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에 “더 이상의 좌파 정치는 없다” “제정신인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보수의 귀환을 강조했다. 그는 또 “총리 취임 첫날 국경을 폐쇄하고 난민 신청자들을 거부하겠다”고도 했다. 사민당은 이런 메르츠를 “미니 트럼프”라고 공격하고, 보수 정당들을 비난하는 대규모 길거리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친이민 정책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질려버린 독일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메르츠가 보수적인 흐름을 주도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호흡이 잘 맞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이와 관련,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메르츠는 100번 이상 미국을 방문했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롤모델 중 하나로 꼽는다”며 “역사상 독일 정부 수반이 이렇게 미국에 호의적인 적이 없었다”고 짚었다. 트럼프도 독일 총선 직후 소셜미디어에 “미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유권자들도 (친환경) 에너지나 이민과 같은 비상식적인 (좌파) 어젠다에 신물이 났다”며 “독일과 미국의 위대한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메르츠는 이런 분위기에 일단 선을 긋는 모습이다. 그는 총선 직후 “강한 유럽을 만들어 차근차근 미국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유럽의 독자 노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를 겨냥해 “미국인, 적어도 미국인 일부는 유럽의 운명에 무관심하다는 게 분명하다” “워싱턴은 모스크바만큼이나 과격하고 터무니없다”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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