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 둘째)이 이끈 민간 경제사절단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소통의 물꼬를 튼 가운데 앞으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최 회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이끈 민간 경제사절단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소통의 물꼬를 튼 가운데 이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워싱턴DC에서 사절단과 가진 면담에서 다음번에는 양국 기업과 정부가 함께 만나 논의를 이어가자고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 달 방미 예정이던 한국경제인협회 사절단은 정부 간 협상 추이를 지켜보기 위해 아웃리치(물밑 접촉) 일정을 연기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의 무역·통상 정책을 총괄하는 러트닉 장관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최태원 회장 등 경제사절단과의 면담에서 한국 기업들이 제안한 6대 분야 협력에 대해 “아주 좋은 협력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미국에) 방문한 한국 기업 및 미국 내 파트너사, 미국 주요 기업과 양국 정부가 함께 후속 회의를 마련해 체계적 협력을 논의해보자”라고 했다. 사절단은 양국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선, 에너지, 원전, 인공지능(AI)·반도체, 모빌리티, 소재·부품·장비 등 6대 분야의 협력안을 제시했다.

재계는 미 정부와 지속해서 소통할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러트닉 장관은 특히 조선 분야 협력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다만 러트닉 장관이 양국 민관이 함께 만나는 방안을 제시한 만큼 국내 탄핵 정국이 일단락된 뒤에나 추가 회의가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러트닉 장관이 취임 선서식 당일 면담이 성사된 것은 이번 사절단의 성과”라고 말했다.

러트닉

민간 차원에서 대화의 물꼬는 텄지만, 기업들의 대미 투자 셈법은 복잡해졌다. 러트닉 장관과 면담에서 한화그룹이 약 1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사례 등을 이야기하자, 러트닉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투자정책’을 소개했다. 미국에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면 전담 직원을 배치해 허가 등에 속도를 내는 ‘패스트트랙’ 절차를 지원하고,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면 최고급 대우를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재계 관계자는 “반드시 10억 달러 이상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큰 투자를 할수록 지원이 많다는 취지였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 투자하라는 압박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트럼프 정책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 투자 계획을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또 향후 대미 투자 확대·관세 면제 등에 대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면 민관이 함께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절단에 참여한 한 기업 관계자는 “탄핵 정국이라 재계가 나서서 민간 사절단이라는 자구책을 냈지만, 미국 정부와 소통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하루빨리 정부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절단 참여 기업들은 오는 27일 더불어민주당 경제안보특별위원회가 개최하는 통상정책 간담회에 참석해 국회 차원의 한미 소통 강화도 요청할 계획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6일부터 28일까지 워싱턴DC를 찾아 미 상무부 관계자 등을 면담할 예정이다. 안 장관은 철강 등 품목별 관세,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한 면제를 적극 요청하고, 조선·에너지 등에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다음 달 중순 방미를 추진하던 한경협은 일단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대한상의와 마찬가지로 대미 투자 기업들과 함께 미 워싱턴DC를 방문해 아웃리치에 나설 계획이었다. 한경협 관계자는 “정부 간 협상의 추이를 봐가면서 아웃리치 방향과 일정을 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