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신진서, 커제와 어깨 맞대다… 메이저 세계대회 8관왕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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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 9단이 제1회 난양배에서 우승하고 세계대회 8회 우승을 달성했다. 사진은 2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회 난양배 결승 2국에서 대국 중인 신진서 9단. 사진 한국기원
바야흐로 신진서 전성시대가 개막했다. 신진서가 메이저 세계대회 8관왕에 올랐다.
신진서(25) 9단이 2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회 난양배 결승 2국에서 중국 왕싱하오(21) 9단에 227수 만에 흑 불계승하고 결승 종합전적 2승으로 난양배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난양배 우승으로 신진서는 메이저 세계대회 통산 8회 우승을 달성했다. 메이저 세계대회 8회 우승은 전 세계 프로기사 중 네 번째로 많은 우승 기록이다. 1위는 통산 17회 우승의 이창호 9단이고, 2위와 3위는 14회 우승의 이세돌 9단, 9회 우승의 조훈현 9단이다. 신진서 이전에 세계대회에서 8회 우승한 선수는 중국의 구리와 커제 9단이 있다. 메이저 세계대회는 출전 선수가 16명 이상이고 우승 상금이 1억5000만원 이상인 세계대회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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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신진서가 커제와 세계대회 우승 횟수에서 동률을 이뤘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당대 최강자가 누구인가를 따질 때 세계대회 우승 횟수를 제일 먼저 비교하기 때문이다. 신진서도 “커제의 우승 기록은 꼭 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1997년생인 커제의 마지막 세계대회 우승 기록은 2000년 삼성화재배로 무려 5년 전이다. 커제로서는 지난달 LG배 결승에서 반칙으로 몰수패를 당한 게 뼈아플 수밖에 없다.
반면에 신진서는 지난해 8월 란커배에서 우승한 뒤 6개월 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정상급 프로기사가 30세까지는 전성기 실력을 보인다고 했을 때, 신진서가 이창호의 기록은 몰라도 이세돌은 뛰어넘을 수 있다고 바둑계는 기대한다. 신진서는 2025년 들어 11연승을 구가 중이다.
신진서는 우승을 확정지은 뒤 “농심배도 잘 마무리하고 난양배에도 우승하는 등 올해 기분 좋게 출발했다”며 “하지만 바둑 기사는 장기 레이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만족하지 않고 올 한 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신진서의 세계대회 8관왕 등극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난 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제26회 농심배 최종국을 마치고 22일 귀국했다가 24일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26일과 28일 세계대회 결승전을 치렀다.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21일 농심배 최종국에서 마주한 딩하오 9단은 중국 랭킹 1위고, 난양배 결승전 상대 왕싱하오도 중국 랭킹은 6위지만 ‘고레이팅(Goratings)’ 순위에서는 신진서에 이어 세계 2위에 오른 강자다. 고레이팅 순위가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세계 프로기사 순위는 고레이팅만 집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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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열린 난양배 결승 2국 장면. 오른쪽이 신진서 9단이고 왼쪽이 중국 왕싱하오 9단이다. 사진 한국기원
더욱이 왕싱하오는 2004년생이다. 신진서보다 네 살 어리다. 신진서는 세계대회 결승에서 처음으로 자신보다 나이 어린 선수를 상대했다. 바둑 내용도 만만치 않았다. 결승에서 2연승을 거뒀지만, 내용은 매우 어려웠다. 특히 28일 열린 결승 2국에선 피 말리는 접전 끝에 역전극을 연출했다. 승률이 10%까지 떨어졌던 바둑을 신진서가 놀라운 승부 호흡으로 뒤집었다.
프로기사가 바둑이 불리할 때 쓰는 상용의 필승 전략이 있다. 흔들거나 버티거나. 흔드는 건 싸움을 걸어 국면을 혼란하게 이끄는 전략이고, 버티는 건 먼저 집을 지은 뒤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 작전이다. 신진서는 우선 흔들었다. 상대 돌을 끊고 적을 도발했다. 그러나 왕싱하오도 강했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다음에는 버텼다. 상변에 큰 집을 짓고 하변 흑 대마 수습에 승부를 걸었다. 왕싱하오가 바로 급소를 찔러 들어왔다. 그러나 신진서는 경이로운 타개 솜씨를 선보이며 하변 흑 대마 두 개를 다 살려냈다.
신진서는 국후 인터뷰에서 “대마가 다 살았을 땐 역전됐다고 생각했고, 끝내기 정리하면서 이겼다고 생각했다“며 “왕싱하오는 역시 굉장히 어려운 상대였는데 경험이 더 많아서 이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이날 승부를 복기했다.
난양배는 여러모로 특이한 세계대회다. 중국바둑협회와 싱가포르바둑협회가 대회를 주최한다. 두 나라가 공동으로 세계대회를 주최하는 건 난양배밖에 없다. 하여 규칙은 덤 7집반의 중국 룰을 따르고, 상금은 싱가포르달러로 준다. 우승 상금은 25만 싱가포르달러(약 2억7000만원)다. 세계대회 최초로 피셔 방식을 적용한 것도 이채롭다. 제한시간을 2시간씩 주고 초읽기 시간은 안 준다. 대신 매수에 15초씩 추가한다. 가장 놀라운 규칙은 세계대회 최초로 도입한 ‘무음 초시계’다. 다른 대회에서는 초읽기에 들어가면 초시계가 ‘10초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카운트다운이 없으니 선수가 알아서 제한시간 안에 착수해야 한다.
이 모든 악조건에도 신진서는 흔들림이 없었다. 대국 일정이 빡빡해도, 대회마다 규칙이 달라도, 결승전 상대로 누가 나와도 우승은 늘 신진서가 하는 시대다. 신진서 전성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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