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젤렌스키 '삿대질 회담' 쇼크…한국도 남의 일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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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당신(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은 혼자가 아니다.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 당신과 함께 계속할 것이다.”(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건방진 돼지(젤렌스키)가 제대로 한 방 먹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옳았다.”(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지난달 28일(현지시간)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공개 설전 직후 나온 유럽, 러시아 지도자의 상반된 반응이다. 예정됐던 오찬, 공동 기자회견, 광물협정 서명식 등이 모두 취소된 채 파국으로 끝난 트럼프·젤렌스키의 ‘노딜’ 정상회담은 전 세계에 커다란 후폭풍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 편에 선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지지·연대를 표한 유럽이 ‘미·러 대(對) 우크라이나·유럽’이라는 선명한 대치 구도를 형성하면서 종전 논의가 난항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정학적 안보 위기에 놓인 한국 입장에서도 남 일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면충돌의 방아쇠를 당긴 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문제였다. 전체 약 50분의 대화 중 절반쯤 지났을 때 젤렌스키 대통령이 “푸틴은 살인자다. 안전보장 없는 휴전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고개를 저으며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건 J D 밴스 부통령이었다.
유럽 “미국, 더는 동맹 아니다”…노딜회담에 힘받는 자강론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백악관에 와서 그 문제를 따지는 건 무례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젤렌스키는 팔짱을 끼며 ‘언쟁 모드’를 취했고, 트럼프는 언성을 높여 “당신(우크라이나)에겐 카드가 없다. 당신은 지금 이 나라에 매우 무례한 짓을 했다”고 쏘아붙였다.
굳은 표정의 젤렌스키는 백악관을 떠났다. “사실상 백악관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폭스뉴스는 보도했다. 트럼프와 밴스 모두 젤렌스키에게 “미국에 고마워해야 한다”며 면박을 줬지만 CNN은 팩트체크를 통해 젤렌스키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에 최소 33차례 감사를 표했다고 짚었다.
트럼프와 백악관은 여전히 강경한 기류다. 트럼프는 노딜 회담 뒤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로 떠나기 전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거나, 아니면 그(젤렌스키)가 끝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전보장’보다 ‘(종전)협상’이 먼저라는 기존 원칙 그대로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 철회론이 흘러나왔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군사물자 수송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젤렌스키 사임론’도 등장했다. 공화당 내 우크라이나 지원파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그(젤렌스키)가 사임하고 우리와 거래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거나, 그가 변해야 한다”고 했다. 젤렌스키가 회담 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관계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하고 장문의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미) 의회, 미국 국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한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유럽에선 미국에 대한 실망감과 젤렌스키 지지 의사가 동시에 분출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오랜 ‘대서양 동맹’에 균열 징후까지 감지된다. 도미니크 드 빌팽 전 프랑스 총리는 “미국은 더는 유럽의 동맹으로 볼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며 유럽 안보 자강론에 힘을 실었다.
트럼프가 대외 전략의 근본적 전환을 공개 천명한 것은 한반도에도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 미국은 과연 한국에 핵우산 공약을 지킬 것인가. 엘브지리 콜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을 비롯한 미국 공화당 핵심 인사들은 북한의 보복 우려 때문에 핵우산 공약을 지키기 어렵다고 이미 수차례 경고했다.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동맹보다 거래적 접근 방식을 선호하는 트럼프가 북한에 직접 관여할 경우 한·미 동맹의 가치 역시 뒷전으로 밀리며 ‘한국 패싱’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달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석좌가 진행한 팟캐스트에 출연, “북·미 정상 간 대화가 시작될 경우 정작 안보 위협의 당사국인 한국이 배제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26일 첫 각료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노코멘트했다. 다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좋은 관계”라고만 했다. “미국의 방어”를 공약한 전임 정부와는 확연히 달랐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안보 석좌는 “미국의 새 행정부가 대북 외교에 나서기 전부터 한국은 동등한 역할 보장을 약속받아둘 필요가 있다”며 “독자적 방어 역량과 다자외교 강화에도 동시에 힘쓸 때”라고 중앙일보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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