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소설가로 돌아온 에단 호크, "연기가 가진 치유의 힘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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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하딩? 댁과 댁의 부인에 대해 떠들어 대는 말이 사실이에요?”

연극 ‘헨리 4세’ 리허설을 위해 미국 뉴욕 JFK 공항에 막 도착한 서른 두 살의 영화배우 윌리엄 하딩. 호텔로 향하는 택시에서 그를 알아본 기사가 다짜고짜 이렇게 묻는다. 한동안 미국을 떠나있던 사이, 그의 불륜과 그로 인해 파탄 난 결혼생활이 언론과 소셜미디어(SNS)를 도배한 상황이다. 지난해 9월 한국에서 출간된 소설 『완전한 구원』(원제 A Bright Ray of Darkness·다산책방)은 10대에 데뷔한 유명 배우 하딩이 사생활 문제로 세간의 비난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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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일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에 참석한 에단 호크. 그는 자신의 대표작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만든 피터 위어 감독의 평생공로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이 영화제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소설의 저자는 할리우드 배우 에단 호크(55)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 '비포 선라이즈'(1995)를 비롯한 '비포' 3부작, '보이후드'(2014) 등으로 한국에도 많은 팬이 있는 그는 20대에 데뷔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장편소설『이토록 뜨거운 순간』(1996)과 『웬즈데이』(2002년)를 냈고, 자기 계발서 『기사의 편지』(2015), 그래픽노블 『죽은 자들』(2016) 등을 출간하며 작가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완전한 구원』은 그가 20여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미국에서는 2021년 출간)

톱스타끼리의 결혼과 파경(호크는 배우 우마 서먼과 1998년 결혼해 2003년 헤어졌다)을 비롯한 여러 설정들이 자연스레 '배우 에단 호크'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는 중앙일보와 가진 e메일 인터뷰에서 "자전적이라기보다는 그동안의 배우 경험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라고 했다. 스스로 삶을 나락으로 몰고 간 한 배우가 연극 무대에 서 자신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통해 "연기가 지닌 치유와 변화의 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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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토드 앤더슨 역할로 출연한 에단 호크. 사진 네이버 영화

처음으로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썼다. 계기가 있나.
『완전한 구원』 이전에 소설을 몇 편 썼는데, 내가 연기를 주제로 한 글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 주제에 곧바로 뛰어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소설의 사전 조사를 25년 넘게 한 셈이니까. 이 직업에 대해 타블로이드 신문들이 다루는 피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연기가 지닌 치유와 변화의 힘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읽다 보면 배우 에단 호크가 계속 머리를 맴돈다.
이름이 알려진 배우라 좋은 점 하나는 소설을 출판하기가 비교적 쉽다는 것이다. 반면 나쁜 점은 사람들에게 '첫인상'을 남길 기회가 이미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책을 손에 들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기존의 인식이 엄청나게 자리 잡고 있으니까. 이 소설을 자전적인 작품이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작품 속 등장인물은 작가 본인이 아닌, 일종의 '그림자 자아'처럼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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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 호크의 세번쩨 소설 『완전한 구원』 표지. 사진 다산북스

주인공 하딩처럼 이른 나이에 배우를 시작했다. 유명인으로 사는 일이 고통이었나.
나는 그걸 ‘사치세(luxury tax)’라고 부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재능 있는 사람들과 일할 기회를 얻는 것은 정말 좋지만, 익명성 결핍에서 오는 단점이 몇 가지 있다.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강렬한 외로움, 그것이 가장 힘든 점이다.
연극을 ‘첫사랑’이라고 할 만큼 연극 무대에 애착이 강하다고 알고 있다. 소설 속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를 택한 이유는?  
첫째, '헨리 4세'는 훌륭한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작품이다. 그 덕분에 다양한 배우들을 등장시켜 주인공을 돕는 역할을 맡길 수 있었다. 둘째, 내가 이 소설에서 탐구하고 싶었던 주제들, 즉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는 아들이나 남성성이라는 주제와 '헨리 4세'의 테마가 멋지게 연결되는 것 같았다. 또한 내가 항상 홋스퍼(헨리 4세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하는 배역)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를 내면에서부터 탐구해 보고 싶었다.
소설가이자 배우,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 일이 당신에게 가장 큰 의미를 갖나.
내게는 앞으로도 항상 배우가 첫 번째일 것이다. 글쓰기, 그리고 영화 연출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배우로 일한 경험에서 나왔다. 배우로 살아가는 삶에서 가장 멋진 것은 바로 협업이다. 나는 영화 일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책을 쓴다. 소설을 쓰는 작업은 영화나 연극과 달리 혼자서 무언가를 할 때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소설가로서의 일상은 어떤가.  
온갖 방식으로 쓴다. 영화 일을 쉴 때 쓰기도 하지만 촬영장 트레일러 안에서, 비행기에서도 쓴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소설을 쓰는 극단적인 규칙을 실천한 적도 있고, 반면 순간적으로 솟아오르는 영감을 좇아 믿을 수 없을 만큼 불규칙하게 쓰기도 했다. 집필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을 땐, 한동안 정해진 규칙에 따라 집중해야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다.
소설 속 하딩은 유약하고 쉽게 중심을 잃는 남자로 그려지지만, 자녀들에게는 일관성 있게 깊은 사랑과 헌신을 표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당신에게 변화를 가져왔나.
부모가 되면 누구나, 아니 대부분이 변한다. 나는 부모가 되는 것이 엄청나게 명확하고 자연스러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넷인데, 그 아이들이 내 삶의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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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 호크의 대표작 '비포 선라이즈'의 한 장면 사진 네이버 영화

한국엔 당신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 많다. 하지만 소설가 에단 호크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당신의 소설을 접한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다. 오래전부터 한국 영화 산업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한국은 정말 굉장한 곳 같다. 영화제에 참석하거나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에 가는 상상을 늘 하고, 곧 현실이 되면 좋겠다. 내 영화 중 특히 '비포 삼부작'이 한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프로젝트였던 '보이후드'가 그렇게 먼 곳까지 전해졌다는 사실도 매번 놀랍다. 나의 책도 한국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다양한 사회·정치 상황에서 예술 작품이 어떻게 해석될지 미리 알아내기란 항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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