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소쿠리 투표’ 징계한다더니, 고향에 1급 자리 준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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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대 대선 당시 선관위가 확진·격리자 ‘임시기표소 투표지 운반’ 봉투를 플라스틱 소쿠리에 모아놓은 모습.
20대 대선 ‘소쿠리 투표’ 논란과 관련해 당시 선거관리 책임자가 솜방망이 징계를 받은 뒤 연고지에서 고위 직책을 맡은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지난달 27일 감사원의 ‘선관위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와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22년 3·9 대선 사전투표 때 소쿠리 투표 논란이 벌어질 당시 선거정책실장으로 선거 절차 사무를 총괄 관리하던 A씨(1급)는 그해 7월 경기선관위 상임위원으로 발령났다. A씨 거주지가 강원도 원주인 점을 고려해 비연고지로 발령한 문책성 인사 조치였다는 것이 선관위 측 설명이다. 선관위는 이후 소쿠리 투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자체 감사 뒤 그해 12월 1일 A씨에게 정직 3개월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이후 선관위는 2023년 7월 A씨를 충북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재지명했다. A씨는 충북선관위가 위치한 청주 인근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만큼 연고지로 발령난 셈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징계 처분을 하면서 비연고지로 발령하기로 해놓고, 이후 연고지로 다시 발령해 준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특혜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A씨 측은 “선관위에 특정 자리를 요청한 적이 없다”며 “청주도 대학 입학 뒤 떠난 지 오래”라고 해명했다.
소쿠리 투표 논란으로 노정희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장(대법관)은 대국민 사과 뒤 사퇴까지 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막상 제 식구에 대해선 1급 자리 보전은 물론 고향까지 배려한 인사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은 “특정인의 이익 보전을 위해 부당하게 인사가 운영된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A씨는 올해 충북 선관위에서 정년퇴임할 예정이다.

당시 선거관리 부실 논란을 보도한 중앙일보 지면. [중앙포토]
A씨가 맡은 상임위원은 감사원이 선관위의 나눠먹기식 인사 사례로 지적한 대표적 자리다. 원래 교수나 법조인 등 외부 인사도 임명할 수 있는 자리지만 ‘4급 이상 공무원 중 선거사무에 7년 이상 종사한 사람’이란 내부 규정을 만들어 사실상 선관위 인사로만 상임위원을 채울 수 있게 만들었다.
한편 선관위가 그동안 재외 선거관리를 위해 직원을 해외로 파견하면서 어학 점수를 제출받지 않았던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선관위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재외 선거업무 지원을 위해 재외공관에 총 158명의 직원을 파견했다. 재외선거관은 외교관 신분으로, 외교부 예규인 재외공관 직무 파견 업무처리지침을 적용받는다. 지침에 따라 재외공관 파견 직원은 파견 전 일정 기준 이상의 공인 영어 성적(토익 점수 790점 이상)이나 해당 국가 언어시험 성적을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선관위는 2011년 최초 재외선거관 파견 당시 “갑작스러운 파견”을 이유로 파견 후보자 선발 과정에서 외국어 성적 요건을 면제해 달라고 외교부에 요청했다. 이에 외교부는 최초 파견자 55명에 한해 외국어 요건을 면제했다.
문제는 선관위가 이후 내부 규정을 개정해 단기 파견 직원에 대해 외국어 요건을 면제했다는 점이다.
2015년 4월 선관위 공무원 재외공관 파견 규정을 개정해 2년 미만 단기 재외선거관의 경우 외국어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파견 후보자 선발이 가능하도록 했다.
외교부엔 ‘재외선거사무 특성상 외국어 능력보다 선거관리 능력이 중요하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업무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에 따라 10년간 선관위 직원 97명이 어학 점수를 제출하지 않고 재외공관에 파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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