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돈 쓰러 가자" 서울행 버스 만원…카드매출 70% 수도권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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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전 11시 강원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려는 승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서울고속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5~10분 간격으로 출발하지만, 이날 오전 7시부터 정오까지 모든 버스가 매진됐다. 원주=정진호 기자

지난 1일 강원 원주 시외버스터미널엔 서울행 버스를 타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5~10분 간격으로 서울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했지만, 토요일 오전 시간대는 전부 매진이다. 대학생 진형권(20)씨는 이날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기 위해 고속버스를 탔다. 진씨는 “전시를 좋아하는데 전부 서울에서 열리다 보니 1달에 2번 이상 서울에 간다”고 말했다.

병원·공연·쇼핑 집중 서울, 돈 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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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고속버스 앱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가 모두 매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속버스 티머니 캡처

주말 오전 서울행 버스를 타기 위해 ‘매표 경쟁’에 나서는 풍경은 대다수 비수도권 지역 터미널에서 엇비슷하게 펼쳐진다. 이날 오전 고속버스 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전북 전주ㆍ군산, 충북 충주ㆍ청주, 충남 공주ㆍ당진, 세종 등 서울까지 버스로 2시간여가 걸리는 지역의 차표가 매진됐다.

공연ㆍ전시장 등 문화시설과 백화점ㆍ쇼핑몰 등 주요 소비처가 서울에 몰려 있다 보니 지방 거주자까지 서울에서 돈을 쓰고 있다. 6일 중앙일보가 BC카드에 의뢰해 지역별 카드 매출 비중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체 카드 매출액의 45.2%가 서울에서 나왔다. 경기도가 21.1%를 차지해 서울과 경기에만 전국 카드 매출의 66.3%가 몰렸다. 인천(3.7%)까지 포함하면 수도권 비중이 70%에 달한다.

카드매출 비중, 서울 대폭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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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서울 쏠림은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서울‧대전‧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카드 매출액 비중이 전년과 같거나 감소했다. 대구(3.8%→3.3%), 충북(1.9→1.7%), 전북(1.9%→1.5%)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서울은 2023년 42.4%에서 지난해 45.2%로, 2.8%포인트 증가했다.

인구와 일자리가 모두 수도권으로 몰리다 보니 소비도 그만큼 집중됐다. 올해 1월 기준 전체 취업자(2774만3000명) 중 수도권 취업자가 1431만7000명으로 51.6%에 달한다. 인구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사는 상황에서 소비의 서울 쏠림까지 심화하고 있다. 문화‧의료‧쇼핑 등이 서울에 집중되면서 경기‧인천권과 비수도권의 소비 여력까지 빨아들이는 구조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공연 회차(12만5224회) 중 서울의 공연 회차는 8만2160회로 65.6%를 차지했다. 인구 대비 의사 수나 문화시설 역시 서울이 가장 많다.

지역 경제 먼저 붕괴

내수 침체까지 겹치며 지역 경제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소상공인 경기 지표인 서비스업생산지수를 시도별로 비교하면 2020년을 100으로 했을 때 지난해 인천이 126으로 가장 높았고, 서울(123.3)이 광역자치단체 중 두 번째였다. 수도권 서비스업생산지수는 2020년 이후 매년 상승세다. 전년보다 지수가 하락한 세종(-3.1), 경남(-2.7), 경북(-1.1), 전북(-1.1), 충남(-1.1), 전남(-0.8), 충북(-0.5), 강원(-0.5) 등 비수도권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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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내수 격차는 상가 공실률로도 나타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서울·경기·인천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각각 8.9%, 10%, 12.7%로 전국 평균(13%)보다 낮았다. 반면 세종(24.1%), 충북(19.5%), 전북(18.9%), 경북(17.8%) 등의 공실률은 서울의 2배를 웃돌았다. 세종 대평동 부동산 관계자는 “임대료를 감당 못 해 관리비만 내거나 200만원이던 월세를 50만원으로 깎은 곳이 많다. 체감 공실률은 40% 이상”이라며 “소상공인 어려움이 커지면서 폐업이 늘어난 영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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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세종시 어진동에 위치한 쇼핑몰이 통째로 비어 운영을 중단한 모습. 유리창엔 입점 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세종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4.1%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높다. 세종=임성빈 기자

지방 일자리 늘려야
기업 일자리가 적은 비수도권은 자영업 비중이 높다. 지난 1월 서울의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15.5%로 전국 평균(19.7%)을 하회했지만, 전남(30.8%), 경북(28.9%) 등은 자영업 의존도가 높았다. ‘내수 부진→자영업자 소득 감소→지역 내 소비여력 하락’으로 확산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진다.

이 때문에 비수도권의 임금 일자리 확대가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원정소비’까지 나타나는 상황에서 일자리 없이는 지역 인구와 자영업 소득 감소의 악순환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수도권 기업 이전에 대한 인센티브와 지역 내 창업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수도권 기업에 대한 전면적인 규제 완화나 세제 지원 등을 통해 기업이 지방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일자리가 있어야만 인구가 유입되고 소비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비수도권의 경제 주축이 자영업이다 보니 내수 부진으로 지역 경제 전체가 붕괴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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