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왕따 소년 집에 숨어든 유대인 소녀...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
-
3회 연결
본문

영화 '화이트 버드'의 주인공 사라(아리엘라 글레이저)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 속에서 자신을 지켜준 소년 줄리안(올란도 슈워드)과 사랑에 빠진다. 사진 영화사 찬란
영화 ‘화이트 버드’(12일 개봉)는 세상을 구하는 ‘다정함’에 대한 얘기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퇴학당한 뒤 새 학교로 전학 와 의기소침해있는 손자 줄리안(브라이스 게이사르)에게 할머니 사라(헬렌 미렌)가 자신의 소녀 시절 경험담을 풀어놓으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할머니의 얘기 속엔 또 다른 줄리안이 등장한다.
영화 '화이트 버드' 리뷰
프랑스 중산층 가정의 소녀 사라(아리엘라 글레이저)는 그림에 소질이 있는 평범한 학생이다. 평온하던 그의 일상에 홀로코스트 광풍이 몰아친다. 나치 독일 치하에 놓인 프랑스에서도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면서 독일군이 학교까지 쳐들어와 유대인 학생들을 체포한다. 가까스로 도망친 사라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는 동료 학생 줄리안(올란도 슈워드). 소아마비로 불편한 다리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소년이다.

영화 '화이트 버드'에서 줄리안(올란도 슈워드)은 나치 독일의 탄압을 피해 자신의 집 곳간에 숨어 지내는 유대인 소녀 사라(아리엘라 글레이저)를 위해 영사기를 틀어준다. 사진 영화사 찬란
들키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줄리안은 사라를 자기 집 곳간에 숨겨주고, 그의 부모 또한 사라를 보살펴준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사라의 은신처가 들통나면서 곳간의 평화가 깨지게 된다.
이 영화는 2017년 개봉한 영화 ‘원더’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원더’는 선천적 안면 기형을 가진 소년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가 세상 밖으로 나와 성장해가는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원더’에서 어기를 괴롭히던 줄리안(브라이스 게이사르)이 ‘화이트 버드’에 그대로 출연해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서 자신의 잘못을 깨우친다. '불량 소년' 줄리안의 ‘각성’과 ‘성장’을 그린 스핀오프 영화인 셈이다. ‘원더’에서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놈”이란 비난을 받았던 줄리안을 연결 고리로 스핀오프를 만든 이유는 뭘까.

영화 '화이트 버드'에서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은 소년 줄리안(브라이스 게이사르)은 할머니 사라(헬렌 미렌)의 기적 같은 경험담을 듣고선 마음 속 온기가 싹트기 시작한다.사진 영화사 찬란
두 영화의 원작자인 미국 유명 작가 R.J. 팔라시오는 “가해자(줄리안)의 구원까지 그려내지 않으면 ‘원더’의 진정한 세계관은 완성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화이트 버드’를 썼다.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도 구원하고 싶다’는 작가의 집필 의도에 감동한 ‘원더’ 제작자들이 의기투합해 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화이트 버드’에서 곳간은 사라에게 단순한 도피처가 아닌, 세상의 전부였다. 그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을 상상하고, 줄리안과 사랑을 키워간다. 극장에서 일하던 줄리안이 곳간에서 튼 영사기의 빛은 둘을 동화 같은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 빛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한줄기 희망 같은 것이었다. 나중에 사라는 회고한다. “줄리안은 내 은인도 친구도 아닌 나의 빛이란 걸 그 때 깨달았다”고. 그리고 손자에게 얘기한다. “살면서 많은 것을 잊게 되지만, 다정함은 결코 잊지 못한단다. 사랑이 그러하듯 영원히 함께 하니까.”
영화 후반부, 사라가 박물관에서 연설하는 장면을 보면, R.J. 팔라시오가 왜 스핀오프 작품까지 쓰며 ‘구원’이란 주제에 집착했는지 알게 된다. 영화를 연출한 마크 포스터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영화 '더 퀸'(2007)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헬렌 미렌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빛을 발한다.
포스터 감독은 “전쟁이란 잔혹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내면엔 여전히 다정함이 있으며, 그것이 구원이 된다. 러브 스토리에 담긴 인간다움, 다정함에서 나오는 용기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절망에 빠진 사라에게 한줄기 구원의 빛이 돼준 줄리안처럼, 영화는 관객에게 쉽게 식지 않는 온기와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빛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그 빛줄기들이 한데 모이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는 것. 잔인한 비극이 지구촌 곳곳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혐오와 폭력이 일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기에 메시지가 더 큰 울림을 준다.

영화 '화이트 버드'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 사라를 연기한 배우 헬렌 미렌. 사라는 소녀 시절 자신의 경험담을 손자 줄리안(브라이스 게이사르)에게 들려준다. 사진 영화사 찬란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는 명대사를 통해 ‘원더’가 타자에 대한 포용적인 시선을 강조했다면, ‘화이트 버드’는 그것 만으론 충분하지 않으니 내 안의 빛인 ‘다정함’을 실천하라고 촉구하는 듯하다.
새 학교에선 착한 일도 나쁜 일도 하지 않고 무심한 듯 나만의 세상에 빠져 살겠다고 결심했던 줄리안은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선 눈빛이 변하기 시작한다. 자기 안에도 빛이 있음을 깨닫고, 그 빛을 타인과 세상을 향해 발산하기 시작한다. 그런 작은 변화와 실천이야말로 어둠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소중한 첫걸음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