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판자촌에서 아파트까지, '여사장'에서 기업인까지, 생활과 풍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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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대
유승훈 지음
생각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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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장의 탄생
김미선 지음
마음산책
오늘의 일상이 내일의 역사가 된다고 하면, 당장은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역사책을 펼치면 시기마다 첫머리는 정치권력 등 거대한 흐름이 차지하곤 하기 때문. 미시적인 눈으로 역사를 살피는 일은 그래서도 더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1975년 서울의 잠실시영아파트 주택 평면이 평지에 펼쳐져 있는 모습. [사진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 시대』는 산업화와 도시화, 이촌 향도와 베이비붐으로 인구가 급증하던 시기의 서울을 중심으로 그 풍속을 담은 책이다. 판자촌과 달동네, 서민 아파트와 중산층 아파트를 차례로 꿰는 주거 변천사는 물론 구공탄과 연탄 갈기 같은 생활사를 두루 아우른다.
'팽창'의 시대는 곳곳에 드러난다. 출산 장려 대신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홍보했고, 불임시술을 받은 사람에게 공공주택 입주 우선권을 주기도 했다. 콩나물시루로 불리던 교실은 한 반 학생 수가 70, 80명은 예사로 넘고 100명이 넘는 곳까지 있었다.
민속학자로서 지은이의 시선 역시 곳곳에 번득인다. 아파트 추첨에 쓰인 은행알을 두고 지은이가 서울에서 목격한 도당굿, 즉 마을굿의 제관 선출 방식과 견주는 것이 한 예. 예전 집에서 쓰던 불씨와 요강을 이사 때 가져가던 풍습은 사라졌지만, '손 없는 날'의 여전한 의미도 풀어낸다. 자동차 고사, 즉 새 차를 뽑으면 고사를 지내는 새로운 풍속의 등장은 북어와 실타래를 엔진룸에 두는 의미에 대한 설명으로도 이어진다.
1970년대는 '복부인'도 등장했다. 지은이는 이런 여성들을 부동산 투기 주범이자 경제적 악으로 설정한 데는 당시 경제권이 여성에 넘어가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그 욕망이 "서울 사람에 스며들어 너도나도 복부인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썼다.

11971년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 모델하우스가 개관한 모습. [사진 서울역사아카이브].
입체적 접근은 '왕십리 똥파리'란 말의 유래를 살피는 첫 장에 두드러진다. 과거 동대문에서 뚝섬까지 협궤 열차가 다녔고, 왕십리만 아니라 강남에서도 농사를 지어 서울 사람들에게 야채를 공급했고, 거름으로 쓰기 위해 확보한 인분을 어떻게 날랐는지의 이야기가 기생충박멸 운동과 채변 검사의 풍속으로 이어진다.
또 이태원 등 서울 곳곳에 있던 공동묘지와 장례의 풍속, 미아리로 옮겨가기 전 남산에 몰려있던 점집, 미팅·소개팅·선·마담뚜 등 만남과 결혼의 풍속, 산파와 조산원을 비롯한 출산 풍속 등은 단지 서울의 얘기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흔히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지난 얘기를 '라떼' 라고들 한다. 이 책은 개인적 회고담은 아니지만 수준급 솜씨로 뽑아낸 라떼 한 사발. 당시 언론보도 등 실증적 자료를 촘촘하고 매끄럽게 이야기로 펼치는 필력, 민속학자로서의 안목이 풍미를 더한다. 지은이는 20년 전부터 부산·경남에 살며 『부산의 탄생』 등을 썼는데, 그 전에 70~90년대 서울에서 산 경험을 이번 책에 유용하게 녹였다.

버스 승차 때 현금 대신 사용됐던 토큰. 일반용과 학생용이 나뉘어 있었다. [중앙포토]
『여사장의 탄생』은 예나 지금이나 가까이 있지만 경제사의 주역으로 조명받는 경우가 드문 자영업자 여성에 역사적 초점을 맞췄다. 책에 따르면 '장사하는 여성' 이 양산된 계기는 한국전쟁. 피난민, 월남민, 전쟁미망인을 비롯해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먹고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일자리는 없었을뿐더러, 좌판이든 행상이든 장사는 돈벌이와 살림, 자녀 돌봄을 병행할 수단이었다. 이후로도 음식점과 함께 양장점, 미용실 등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진 자영업에서 가게와 살림집이 붙어있는 구조를 선호한 것도 그래서였다.
지은이는 이런 여성들이 가족을 부양하는 자부심에도 성별화된 경제규범, 즉 여성의 돈벌이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서 스스로 자유롭진 않았던 것도 전한다. 지나친 이윤 추구를 경계하거나, 사업 확장보다 '가정경제'를 중시하는 면모도 있었다. 대기업화하지 않은 배경도 이와 무관하진 않아 보인다. 여성 자영업자의 증감과 별개로 1979년 당시 회원 수 408명의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등록된 여사장은 두 명뿐이었다고 한다.
책은 통계와 함께 여러 인물의 구술을 담아내며 90년대 이후 여성 기업인의 급증, 최근의 청년 창업까지 시야를 넓혀간다. 양재 기술로 한국전쟁 시기 미군에 포로복을 납품한 여사장, 수공예 인형으로 시작해 해외 수출로 훈장까지 받은 여사장을 비롯해 여러모로 상상 이상의 삶을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또 다른 역사로서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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