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엄마 없어도 직업 없어도…널 위한 사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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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선한 영향력을 발산하는 두 편의 영화가 있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와 ‘백수 아파트’다. 포용과 연대의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관객 수로만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든 두 감독을 만났다.
김혜영 감독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이후 괜괜괜)

지난달 26일 개봉한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각각 불편한 동거를 소재로 ‘함께 하는 삶’의 소중함을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사진 바이포엠 스튜디오]
주문을 외는 듯한 제목의 이 영화는 김혜영(43)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한 그는 그간 ‘말맛’ 넘치고 매력적인 인물이 나오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스물’(2014), ‘극한직업’(2018) 등 이병헌 감독 작품에 조감독으로 참여했고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에선 연출로 함께했다. 그는 ‘괜괜괜’으로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청소년 성장물에 도전했다.
지난 6일 만난 김 감독에게선 씩씩하고 맑은 주인공 인영(이레)의 모습이 묻어났다. 그는 ‘괜괜괜’에 대해 “좀 시지만 금방 싱그러워지는, 비타민 같은” 영화라고 했다. 서울국제예술단에 소속돼 한국무용을 하는 인영은 엄마를 잃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 예술단 건물에서 비밀스럽게 생활하다 예술감독 설아(진서연)에게 들켜 함께 지내게 된다. 영화는 그 둘의 ‘불편한 동거’와 함께, 졸업 공연을 준비 중이던 예술단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엔 블록버스터급 사건이 없다. 대신 섬세한 인물 묘사를 보는 재미가 있다. 엄마도, 갈 곳도 없는 인영은 가난하단 이유로 예술단 친구들로부터 험담을 듣기도 한다.

김혜영
그러나 ‘괜괜괜’이란 제목처럼 인영에게는 모든 것이 괜찮다. 남사친 도윤(이정하)과 등굣길에 나누는 말장난, 맛난 급식을 양껏 먹는 데서 오는 행복 등을 놓치지 않으며 ‘초긍정’의 태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인영은 진취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려는, 밝고 맑은 캐릭터이길 바랐다”는 김 감독은 “그럼에도 힘든 티를 못 내는 성정은 인영의 결핍”이라고 덧붙였다. 인영 외에도 최고여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예술단 에이스 나리(정수빈)나 남모를 외로움을 품은 마녀 선생님 설아 등 다른 캐릭터들도 자신만의 결핍에 시달린다. 김 감독은 “결핍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루는 ‘앙상블’을 그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청소년 심사위원단이 뽑는 제네레이션 K플러스 부문 최고상 수정곰상을 받은 영화는 지난달 26일 개봉 후 9일까지 총 9만 3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김 감독의 차기작은 다음달 3일 티빙에서 공개되는 드라마 ‘내가 죽기 일주일 전’. 성장 서사가 들어간 판타지 로맨스물이다.
“제게 ‘성장 전문 감독’이라는 분도 계시는데, 어떤 이야기든 ‘성장’의 요소가 담겨 있지 않을까요? 다양하고 매력적인 작품에 도전하며 저만의 색을 발견해가고 싶어요.”
이루다 감독 ‘백수 아파트’

지난달 26일 ‘백수 아파트’는 아파트 층간 소음을 소재로 ‘함께 하는 삶’의 소중함을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백수 아파트’는 백수 오지라퍼 거울(경수진)이 새벽마다 아파트에 울려 퍼지는 층간 소음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이웃 주민들과 힘을 합치는 스토리다.
‘화차’ ‘신세계’ 등의 연출팀에서 일했던 이루다(37)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감독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던 10년 전, 오피스텔에서 쿵쿵 대는 소리가 1년 가까이 계속되자, 영화 주인공 거울처럼 소음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모든 호수를 돌아다니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헤맸어요. 알고 보니 현수막의 나무 프레임이 건물 외벽에 부딪히는 소리였어요.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저를 제외하고 다들 참고 지냈던 거죠. 오지라퍼 한 명만 있었어도 층간 소음이 진즉 해겼됐을텐데...”
그런 아쉬움이 이번 영화의 거울이란 캐릭터로 형상화됐다. 남동생 집에서 조카를 돌봐주며 함께 살던 거울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주변에서 불행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신념을 갖고, 동네 안전을 지키는 오지라퍼가 됐다.

이루다
“모두가 망설일 때 그냥 나서는 사람, 그런 소신과 선의를 가진 사람이 불쏘시개처럼 주변을 감화시켜 소통과 연대를 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거울의 대사처럼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잖아요.”
거울은 일부 주민들과 힘을 합쳐 층별 데시벨을 측정하거나, 주민센터 문서를 찾아보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층간 소음 원인을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층간 소음이 특정 입주민의 잘못이 아닌, 재건축이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는 층간 소음 문제 외에도 열악한 육아 환경, 등하교 안전 등 사회적 이슈를 건드린다. 이 감독은 특히 거울이 빚더미에 앉은 전직 회계사 경석(고규필)의 자살 시도를 막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거울은 “어찌 됐든 살아야 한다”는 말로 경석을 설득한다. 거울 자신에 대한 다짐이기도 한 그 말은 사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를 향한 호소다.
‘백수 아파트’는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 아카데미 수상작 등 대작들 사이에서 힘겹게 관객을 만나고 있다. 9일 현재 관객 수는 3만 7000명. 하지만 이 감독은 부족한 예산과 시간 내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오지랖’의 개념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관람 평을 봤을 때 보람을 느꼈어요. 앞으로도 일상 속 휴머니즘과 유머가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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