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자영업자 비중, 20%선 사상 첫 하회…소비심리 꽁꽁, 줄잇는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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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피자가게로 자영업에 뛰어들어 2022년부터는 중소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해온 권모(48)씨는 폐업을 고민 중이다. 피자가게는 수익을 내며 코로나19 위기도 힘겹지만 이겨냈다. 이후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카페를 열었지만, 매출은 줄고 다달이 나가는 임대료·인건비·재료비·대출 이자로 매달 500만~700만원 적자를 보고 있다. ‘나를 믿고 차려라, 대박 날 것’이라며 가게 위치까지 정해줬던 가맹본부(본사) 대표는 연락이 끊겼고,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했다. 권씨는 “일찌감치 폐업했어야 했는데, 2억원 까먹을 것을 3억원 까먹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20% 밑으로 하락했다. 비상계엄 사태로 얼어붙은 소비심리에, 벌이는 쪼그라들고, 빚은 불어나며 폐업에 내몰리는 자영업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박경민 기자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취업자(2857만6000명) 가운데 자영업자는 565만7000명으로 19.8%를 차지했다. 연간 기준으로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2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63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월간 기준으로도 올해 1월 취업자(2787만8000명) 중 자영업자 비중은 19.7%(550만명)로 같은 달 기준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자영업자 수로 보면 전년 동월 대비 2만8000명 감소하며 1월을 기준으로 2021년 이후 처음 감소를 기록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전인 지난해 11월 자영업자 규모와 단순 비교하면 20만6000명(원계열 기준) 적은 규모다.
다만 통계청은 계절적 요인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겨울철엔 농사를 쉬는 농림어업 자영업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계절적 요인을 제거하고 월간 비교가 가능한 통계로 비교해도 1월 자영업자 수는 작년 11월 대비 2만4000명(계절조정계열 기준) 감소했다. 그만큼 짧은 기간에 빠르게 자영업 경기가 악화한 상황이다.
자영업자 비중이 축소되는 것 자체는 경제가 고도화하고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2년 기준 통계를 보면 노르웨이의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무급가족종사자) 비중이 4.7%로 회원국 중 가장 낮았고, 미국(6.6%)·캐나다(7.2%)·덴마크(8.6%)·독일(8.7%)·호주(9.0%)·일본(9.6%) 등 주요 선진국이 한 자릿수로 낮은 수준이었다. 한국은 콜롬비아(53.1%)·브라질(32.1%)·멕시코(31.8%)·그리스(30.3%)·튀르키예(30.2%)·코스타리카(26.5%)·칠레(24.8%)에 이어 여전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자영업 비중 축소는 경제 구조 변화보다도 내수 부진에 원인이 있다. 영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자영업은 특정 업종에 집중돼 있는데, 지금은 소비자 수요가 매우 부족한 상태”라며 “수요가 떨어져 있으니 자영업으로 돈을 벌기는 더 어렵다”고 했다.
실제 최근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연간 소득을 ‘0원’(소득 없음)으로 신고한 개인사업자가 105만5024명, ‘0원 초과 1200만원 미만’으로 신고한 개인사업자는 816만5161명이었다. 월 소득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개인사업자가 처음으로 900만명을 넘어 전체의 75.7%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311만1434명 증가한 숫자다.

10일 서울 중구 황학동 중고 주방가구 매장 모습. 연합뉴스
특히 소비자 생활과 밀접한 외식업계 타격이 크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외식업체 30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4분기 외식업계 체감 경기 지수는 71.52로, 전 분기 대비 4.52포인트 하락했다. 지수가 100보다 낮다는 것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감소한 업체가 증가한 업체보다 많다는 의미다.
지난해 5월까지 전북 전주에서 카페를 하다 장사가 안돼 폐업한 박모(35)씨도 아직 남은 빚을 갚기 위해 ‘쓰리잡’을 하고 있다. 박씨는 “1억원을 받았던 대출 원금이 7000만원 정도 남아 있다”며 “회사에서 퇴근한 뒤 밤 9시까지는 배달, 이후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새벽에 들어와서 다시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폐업한 자영업자 빚 문제는 심각한 상태다. 한국신용데이터(KCD) 최신 집계에 따르면 올 1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폐업한 사업장 수는 48만5000개에 달했다. 개인사업자 대출 보유 사업장(361만1000개)의 13.4%를 차지한다. 폐업 상태 사업장이 갖고 있는 평균 대출 잔액은 6258만원, 평균 연체 금액도 601만원에 이른다.
전문가는 자영업의 ‘건전성’을 위해선 장기적인 관점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조언한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소매판매의 대형화·체인화·온라인화로 자영업의 입지가 줄어들었다”며 “너무 많은 사람이 퇴직 후 다시 자영업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고용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준석 교수는 “어려운 자영업자를 살리겠다고 정부가 저금리 대출을 해주는 등 금융정책을 폈지만, 이는 언젠가 갚아야 하는 돈”이라며 “자영업이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살아남기 어려운 곳은 정리하고 다른 길을 찾을 수 있게 선별하는 구조조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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