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독] 애써 영입했는데…삼성 AI·로봇 지휘할 인재 줄줄이 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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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스1]
삼성전자가 영입했던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보틱스 인재들이 모두 회사를 떠났다. 컴퓨터 구조 석학인 위구연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지난해 삼성의 선행 연구조직인 삼성리서치 활동을 접었고, 아마존 출신 장우승 빅데이터센터장(부사장)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출신 강성철 제조로봇팀장(부사장)은 지난해 말 사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는 ‘미래 신사업의 핵심 연구 인력’이라며 지난 2019년 이들을 야심차게 영입했지만 끝내 품지 못했다. 반복되는 ‘영입 인재 잔혹사(史)’에, 삼성의 조직 문화와 콘트롤타워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온다.
AI 석학, 삼성 떠나 엔비디아와 협력
지난 2019년 삼성전자는 “AI 연구 역량을 강화하겠다”며 위구연 하버드대 교수를 펠로우(Fellow)로 영입했다. 삼성전자 연구 분야 최고직급 ‘펠로우’를 외부 인사에게 준 건 처음이었다. 위 교수는 삼성리서치에서 인공신경망 기반 차세대 AI 프로세서 팀을 이끌었고, 안식년과 방학 기간을 삼성리서치 연구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학계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초 삼성 관련 활동을 종료했다.
위 교수는 현재 엔비디아의 ‘협력 교수’(academic partner)로 컴퓨터 구조와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분야 연구에 협업하고 있다. 2019~2022년 그와 함께 삼성리서치에서 AI 모델 및 프로세서 연구를 하던 핵심 연구자들은 현재 네이버와 메타에서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힘줬던 ‘빅데이터’ 조직, 마케팅 산하 흡수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빅데이터센터를 최고경영자(CEO) 직속에서 DX(모바일·가전)부문 글로벌 마케팅실 산하로 이동하는 조직 개편을 했다. 비슷한 시기 장우승 빅데이터센터장(부사장)은 사임했다.
장 전 부사장은 아마존의 공급망 최적화 기술 담당 머신러닝 전문가로 일하다가 2019년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2020년말 신설된 빅데이터센터 수장을 맡아 사내 임직원이 손쉽게 데이터를 조회·분석하는 ‘DX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했다. 해당 업무를 지켜봤던 전직 임원은 “사내 흩어진 데이터를 수집·통합하고 보안 체계를 갖추기까지 각 사업부의 협조를 얻어내는 게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로봇 전문가’인 KIST 의료로봇연구단장 출신 강성철 부사장도 지난해 말 사임했다. 2019년 영입된 강 전 부사장은 직전까지 삼성전자 제조로봇팀장을 맡아왔다. 장·강 전 부사장은 얼마간 삼성 고문직을 유지한다.
삼성 ‘영입인재 무덤’ 오명, 왜
쟁쟁한 빅테크 출신을 화려하게 영입하지만, 3~4년 이상 버티는 이가 드물다. 지난 4~5년간 삼성전자에 반복된 이 패턴은 회사에 ‘영입 인재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남기고 있다.
중앙일보가 최근 5년 내 삼성전자를 떠난 외부 출신 연구개발 임원급 8명과 접촉했다. 이들은 대부분 말을 아끼면서도 ‘믿고 기다려주지 않는 문화’와 ‘개별 사업부를 넘어선 전사적 의사결정의 부재’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외부 영입 인사에 대한 사내 견제가 심한데, 이를 넘어설 권한을 부여하지도 보호하지도 않다 보니 버티다가 포기했다는 거다. 한 전직 임원은 “삼성은 기술을 굉장히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기술 말고 생각해야 하는 게 너무 많은 회사”라고 했다.
2020년대 초반 삼성에 근무했던 또 다른 전직 임원은 “돈 버는 사업부와 선행 연구를 하는 부서 간 갈등은 어느 기술 회사에나 있지만, 삼성의 문제는 최종 의사결정과 추진의 속도”라고 말했다. 외부 인재에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은데 투자·결정 속도는 느리니, ‘여기 더 있어봐야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다’는 결론에 회사를 떠나게 된다는 거다.
연구개발 직무에도 노동 경직성이 심한 한국 산업계 전반의 문제도 지적된다. 실리콘밸리는 ‘상시 해고’ 가능성과 ‘파격적인 보상’이 공존하는데, 한국은 안정적이지만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를 하면 내부 반발이 심하다는 것. 글로벌 최고급 인재들이 ‘굳이 한국 기업 삼성’에 남을 이유가 부족해지는 배경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S급 인재’ 영입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거다. 삼성전자의 AI 지휘관 격인 삼성리서치장은 지난 2023년 승현준 프린스턴대 교수 퇴임 후 새 인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 승 교수는 2018년 삼성에 ‘최고 과학자’로 영입돼 2020년부터 삼성리서치장을 맡았으나, 2023년 초 ‘글로벌 R&D 협력담당’으로 역할이 축소되고 그해 말 퇴임했다. 현재는 통신기술 전문가인 전경훈 DX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사장)가 겸직하고 있다.
‘이종결합’ 시대에 ‘순혈’로만은 안 돼
AI 격전기에, 전 세계 테크 기업들은 파격적인 ‘혼종’ 정책을 펼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22년 자체 개발한 AI 모델을 제쳐놓고 스타트업 오픈AI의 챗GPT를 주력 제품으로 택해 AI 경쟁 주도권을 선점했고, 구글은 사내 인사들을 제치고 인수한 영국 딥마인드 창업자 출신 데미스 하사비스에게 2023년 자사 AI 연구 조직을 통채로 맡겼다. 메타는 딥마인드, 오픈AI 엔지니어에게 백지수표급의 파격 보상을 내세워 판을 흔들고 있다. 삼성은 LG반도체 출신 전영현 부회장이 DS부문장을 맡고 퀄컴 출신 최원준 MX개발실장이 최근 사장 승진하는 등 변화 조짐이 있지만, 아직 느리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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