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 최초 블록버스터 ‘쉬리’ 26년 만에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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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개봉한 영화 ‘쉬리’는 남북 관계 배경의 첩보액션물이다. 파격적 설정과 리얼한 총격신 등으로 신드롬급 흥행을 하며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란 평가를 받았다. [사진 삼성전자]
19일 재개봉하는 영화 ‘쉬리’(1999)는 한국 영화 산업의 판도를 바꾼 작품이다. 한국 최초 블록버스터 영화이자,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출발을 알린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석규를 비롯, 송강호·김윤진·최민식 등 화려한 캐스팅에 당시 한국 영화 최대 제작비인 30억원(마케팅 비용 포함)을 들여 만들었다. 북한 군부가 특수부대를 남파시켜 서울 한복판에서 테러를 꾀한다는 설정 또한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여의도 총격 신을 촬영할 때 인근 주민들이 무장 공비가 나타난 걸로 오해해 경찰에 신고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전국 동시 개봉을 한 최초의 한국 영화로, 620만 관객(배급사 집계)을 모았다. 당시까지 한국 영화가 거둔 최고의 흥행 성과다.
이처럼 기념비적인 영화가 다시 관객을 만나기까지 왜 26년이나 걸렸을까. 그간 ‘쉬리’는 온라인에서도 볼 수 없었다. 원래 ‘쉬리’의 투자 배급사는 삼성영상사업단이었다. 1994년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 영상산업 진출을 위해 만든 회사로, 해외 영화 수입은 물론 ‘돈을 갖고 튀어라’(1995) ‘약속’(1998) ‘태양은 없다’(1999) 등에 투자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한 그룹 구조조정으로 삼성영상사업단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해체 직전 투자했던 영화 ‘쉬리’가 대박을 쳤으니, 삼성에게 이 영화는 ‘비운의 명작’이었던 셈이다. 이후 ‘쉬리’의 IP(지식재산권)는 삼성전자에 귀속됐는데, IP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영화를 VOD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볼 수 없었다.

강제규
하지만, 메이저 투자배급사 CJ ENM이 ‘쉬리’ IP 활용을 위한 대행사로 나서며 극장 재개봉이 26년 만에 성사됐다. 필름으로 제작된 ‘쉬리’는 재개봉을 위해 4K 화질로 업그레이드 되고, 총격전과 폭발 신은 음향 리마스터링을 통해 더욱 생생해졌다. 지난해 ‘태극기 휘날리며’(2004)에 이어 올해 ‘쉬리’까지 재개봉하게 된 강제규(63) 감독은 본지와 통화에서 “영화를 관객의 품으로 돌려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 ‘쉬리’ 재개봉 소감은.
- “영화를 이대로 묻어두는 건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여러 사람들을 접촉했다. 다행히 삼성전자가 부가 수익에 대한 고려보다 작품을 관객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명분으로 IP 활용을 허락해줬다.”
-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청담동 한 가게를 빌려 수족관을 세팅하고 총격전을 찍는데, 인근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쇼크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다행히 의식이 돌아왔는데, 그 때 정말 식겁했다.”
- ‘쉬리’가 한국 영화계에 남긴 성취는.
- “당시 한국 영화계는 인프라·시스템이 열악하고 자신감도 없었다. ‘쉬리’가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영화의 흥행보다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영화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심어줬다는 점에서 큰 선물이었다.”
- ‘쉬리’의 속편이 나올 수 있을까.
- “속편, 리메이크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쉬리 이후 남북 첩보 스토리 작품들이 많이 나왔는데, 지켜보면서 ‘쉬리’ 속편에 걸맞는 얘기 구조는 어떤 게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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