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광장 대리전으론 녹 못 벗긴다” 계엄 해법 머리 맞댄 석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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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림대 도헌학술원 주최로 ‘한국 민주주의 구출, 적대 정치의 청산과 개헌 제안’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왼쪽부터 송호근 도헌학술원장,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염재호 태재대 총장,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한림대 제공
국내 석학들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국 진단과 해법 모색을 위해 14일 머리를 맞댔다. 이날 서울 중국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한림대 도헌학술원 주최로 ‘한국 민주주의 구출하기: 적대 정치 청산과 개헌 제안’ 심포지엄이 열렸다.
행사 좌장을 맡은 송호근 도헌학술원장은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그날 한국 민주주의는 무너졌다고 판단했다. 새롭게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미래가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송 원장은 탄핵 찬성·반대 집회가 불붙은 걸 두고는 “우리 제도에 녹이 슬었고 제도를 운용하는 이들의 의식과 행동양식도 비민주적”이라며 “광장에서 시민들이 대리전을 벌이며 들끓지만 이로 인해 녹은 벗겨지지 않고 외려 더 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민주주의 모범 국가에서 석달 전부터 실패 국가로 전락했고, 이 상황에서 미래지향적 대안을 만드는 게 학계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대담에서는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염재호 태재대 총장,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이른바 '87년 체제'의 시한이 다했다고 진단했다.
성낙인 전 총장은 4년 중임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대통령은 국가 원수의 권한을 가지고 국무총리 중심의 내각이 행정권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 양극화 해소를 위해 양원제를 도입하고, 지역구 사업은 지방의원에 맡기고 국회는 200명 비례대표 의원이 담당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정 안정을 위한 대안으로는 “의회 권력 남용의 온상인 국정감사를 폐지하고, 탄핵 소추 대상자의 범위도 축소해야 한다”고 했다.
염재호 총장은 “87년 헌법을 바꿔야 하지만, 단기적 변화가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과도기적 연성 헌법 개정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염 총장은 “제왕적 대통령제나 국회의 과잉 입법권 개선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인공지능(AI) 시대를 고려한 시스템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며 “중앙정부 권한 축소, 지방정부 권한 확대를 통한 다원화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장집 명예교수는 계엄 사태를 “급변하는 국제 정치 환경에서 한국의 국가 책략 발전에 장애를 준 심각한 정치적 자해 행위”라고 진단했다. 이어 “대통령 비서실 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등 권력을 나눠야 한다”며 “팬덤 정치나 캠프 정치처럼 최고 권력자를 위한 정치를 지양하고, 직접 민주주의를 동원해 정당과 국회를 지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현행 양당제에 대해 그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결사 항전하는 정치”라고 평가하며 “양당제가 아닌 다원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림대 도헌학술원 주최로 ‘한국 민주주의 구출, 적대 정치의 청산과 개헌 제안’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한림대 제공
이날 심포지엄에는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개헌 및 정치 개혁을 주제로 발표했다.
강원택 교수는 “대통령과 국회의 극단적 힘겨루기로 정치적 파국을 초래한 87년 체제는 더는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이라며 “양당제를 혁파해 정당 간 타협과 양보가 불가피한 연합 정치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서정건 교수는 “대선과 총선의 주기를 일치시키면 대통령과 의회를 같은 정당에서 맡아 국정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져 정치 안정에 도움 줄 수 있다”며 “당 지도부 중심이 아닌 상임위원회 중심의 국회 운영 등으로 중도파를 확충하는 것도 정당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영수 교수는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꾼다고 대통령제 문제가 해결된다는 건 근거 없는 낙관”이라며 “지방에 지역대표형 상원 제도를 도입해 지역의 권한을 늘리고, 중앙정부의 역할은 제한하는 지방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윤희성 일송학원 이사장, 최양희 한림대 총장 등 학계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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