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고향 사랑한 기업인의 꿈···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3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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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역에 설치된 김재현 작가의 '써클 트래킹'. 산신제의 형식과 과정을 담았다. [파마리서치문화재단]

강릉대도호부 관아 마당에 설치된 윤석남의 설치 작품 '1025:사람과 사람 없이'. [사진 파마리서치문화재단]
강릉시 용강동에 자리한 강릉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 官衙)는 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강릉의 행정을 담당하던 곳이다. 최근 이곳이 현대 예술을 품은 공간으로 변신했다. 마당엔 윤석남 작가의 나무 강아지 조각 367점이 늘어섰다. 이 작품의 제목은 '1025: 사람과 사람 없이'로, 버려진 개들을 돌본 이애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무 조각 위에 1025마리의 개를 그린 작품이다. 이밖에도 중대청 안에 홍이현숙 작가의 영상 작품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강릉'이, 또 다른 건물 전대청 안엔 아르메니아계 시리아 작가 흐라이르 사르키시안의 영상 작품 '스위트 앤 사우어(Swet and Sour)'가 전시됐다.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14일 개막,4월 20일까지#강릉역, 강릉대도호부관아 등 #강릉 재발견 위한공간 8곳#윤석남, 호추니엔, 홍이현숙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이하 GIAF)이 14일 개막했다. 2022년 처음 열린 GIAF는 2023년 제2회 행사가 열렸다. 2023년을 기점으로 2년마다 열리는 GIAF는 강릉이라는 도시와 현대예술을 연결하겠다는 뜻으로 출범한 국제 예술행사로 올해는 4월 20일까지 이어진다.
2년에 한 번씩 열리고, 도시 곳곳의 장소와 예술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광주·부산·제주 국제 비엔날레와 닮았지만, 출발점과 운영 방식 등은 크게 다르다. 첫째, 다른 비엔날레는 지자체가 주도해왔지만 GIAF는 강릉 출신 기업인 정상수 회장이 설립한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이사장 박필현)이 기획했다. 1993년부터 글로벌 바이오기업 파마리서치를 이끌어온 정 회장은 2015년 문화재단을 만들고 예술 행사를 통해 고향 강릉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아트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시의 지원 없이 민간 재단이 운영한다는 뜻이다.
둘째, GIAF는 재단 내부에 정직원 팀으로 구성한 큐레이터 팀이 행사를 운영한다. 1, 2회 행사를 이끈 박소희 총괄 감독이 이번에도 기획과 총괄을 맡았다. 지속성 있게 행사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페스티벌의 제목은 '에시자, 오시자'다. 이는 강릉단오굿에서 악사들이 사용하는 구음에서 따온 것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를 초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올해는 강릉역, 옛 함외과, 작은공연장 단, 창포다리, 옥천동 웨어하우스, 강릉대도호부 관아, 일곱칸짜리 여관,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등 6개 장소에서 11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특히 모든 전시장이 요즘 강릉의 '핫플'인 명주동 카페거리 인근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 모든 프로그램을 도보로 이동하며 볼 수 있다. 박소희 감독은 "강릉은 인구가 20만 명 정도여서 도보로 관람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든다는 게 1회 때부터 품은 목표였다"며 "전시를 통해 강릉 안의 새 공간을 발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옥천동 웨어하우스, 옛 함외과(강릉 최초의 외과 의원이 있던 자리) 등이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강릉역을 전시 공간에 포함시켰다.

강릉대도호부 관아 야외에 설치된 안민옥의 사운드 설치 작품 '럭키 헤르츠'. 강릉 단오장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소리를 채집해 만들었다. [사진 파마리서치재단]

작은공연장 단에서 열리는 '이양희 산조'중 한 장면. 이양희 작가가 정형화된 춤의 틀을 벗어나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매우 강렬하다. 매주 토, 일요일 오후 3시에 공연된다. [사진 파마리서치재단]

강릉대도호부 관아 전대청에서 상영되는 시리아 작가 흐라이르 사르키시안 작가의 영상 작업. 이 작품은 작가의 비극적인 가족사에서 출발해 만들어졌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강릉역엔 강릉 출신의 김재현 작가의 작품 '써클 트래킹'이 깃발처럼 천장에 걸렸다. 옥천동 웨어하우스에선 정연두 작가가 강릉단오제를 경험하며 마주한 풍경을 피아노 연주와 결합한 신작 '싱코페이션 #5'를 상영한다. 또 비영리단체 강릉시네마떼끄가 운영하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선 호추니엔 작가의 신작 다섯 편을 엮어 '변신술사'라는 주제로 상영한다.
1958년엔 교회로 지어졌다가 2010년 강릉시가 매입해 공연장으로 탈바꿈한 작은공연장 단에선 '이양희 산조'와 '이양희 입춤' 공연이 매주 토·일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 공연과 영상 작업이 결합된 이 작품은 한국 신무용에서 파생된 산조와 입춤을 재구성한 것으로 14일 개막 공연에서 몰입도 높은 공연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며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꼭 봐야 할 프로그램 중 하나다.
14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박필현 이사장은 "2022년 첫 행사가 열렸을 때 주변에선 '얼마나 가나 보자'는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남편 정 회장의 고향 강릉 사랑이 정말 지극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곳을 예술 도시로 가꿔보겠다는 의지로 출발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동양화 작가로 남편인 정 회장의 후원을 끌어내며 강릉아트페스티벌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는 "이 페스티벌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든 게 아니다"라며 "미술계에서 10년 동안 눈여겨 봐온 끝에 박 총괄 감독을 영입했다"고 말했다.
행사에 들이는 애정만큼 해마다 예산도 커졌다. 1회 때 2.9억원, 2회 때 4.8억원이었던 예산이 올해는 7억원가량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이사장은 "2년 뒤 경포대 근처에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문화복합시설이 준공된다. 거점 공간이 마련되면 더 좋은 환경에서 페스티벌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기관의 간섭 없이 정말로 저희가 꿈꾸는 축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지역 시민과 함께하기 위해 시민 봉사자로 구성된 시티 가이드와 시티 도슨트가 함께하는 안내 프로그램(6인 이상은 별도 예약 가능)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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