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손님 끊겨도 밥줄 안 끊기게...골목경제 살리고 재취업 지원 [위기의 자영업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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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문제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한쪽을 풀어내면 다른 한쪽이 더 꼬이는 실타래와 같다. 장기간 불경기와 내수 부진, 원·부자재값 상승 등 요인은 기본값일 뿐이다. 생계의 터전에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임대), 본사에 거역했다가 보복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프랜차이즈), ‘울며 겨자 먹기’로 지출하는 수수료·광고비(플랫폼), 정책금융이라는 이름의 ‘폭탄 돌리기’(부채), 언감생심인 일과 가정의 균형(육아) 등 이중·삼중의 다(多)중고 속에서 자영업자는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취약계층으로서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여론도 만만찮다. 특히 정부 정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융 지원 등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데다 훗날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지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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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제윤경 국회의장 민생특별보좌관은 “자영업자에게 필요한 건 급전 대출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골목 경제가 활기를 띠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옥우석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도 “코로나 확산 방지라는 사회 편익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보상이 아닌 신용 연장 식의 지원이 이뤄지면서 부채 문제만 커졌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영세 자영업자나 폐업자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한편, 재창업보다는 재취업을 유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복지정책의 부족”이라며 “재기가 어려운 이들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복지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망했을 때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재창업 대신 재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재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출발 통로를 더 과감히 터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은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채 완납 부담 때문에 폐업도 제대로 못 하는 형편인 만큼 폐업 후 취업 시 자영업 부채의 개인 부채 전환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며 “재취업 시 정부가 고용유지 지원금 등 임금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임대인, 프랜차이즈 본사, 온라인 플랫폼과의 갈등에 대해선 적극적인 법 집행, 단체협상권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옥우석 교수는 “골목상권 형성으로 인한 이득을, 상권을 일군 사람들이 아닌 건물주가 차지하는 게 현실”이라며 “법을 보다 강하게 집행해 계약과 거래의 공정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본·독일에선 중소기업·소상공인이 정당한 교섭을 위해 단체를 만들 경우 부당한 공동행위나 담합행위로 보지 않는다”며 “활발한 교섭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인 만큼 가맹점주나 플랫폼 입점업체 등에도 단체협상권을 부여해 힘의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고 말했다.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선 상인회 역량 강화, 지방정부의 행정 지원이나 교육 프로그램 제공, 예산 한도 내에서 골목상권용 지역화폐나 바우처 지급 필요성이 제기된다. 제윤경 특보는 “자영업자들이 가장 원하는 건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서 돈을 쓰는 것”이라며 “일정 기간 골목상권에서만 써야 하는 지역화폐는 골목상권 소비문화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관광객에게 골목상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나 할인권을 주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본지 보도 이후

‘2025 자영업 리포트’ 보도 이후 조금씩 변화의 기운이 감지된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상가건물임대차 분쟁조정제도 활성화 방안을 담은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중앙일보 보도대로 임차인은 시간과 비용에 대한 걱정 때문에 쉽게 소송을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개정안이 법제화하면 빠른 분쟁 조정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월별 일괄 할인행사 동의 접수로 원치 않는 행사까지 참여토록 한다”고 지적받은 굽네치킨은 보도 이후 건별 할인행사 동의 접수 방식으로 변경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만쿠라’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를 재개하는 등 사실상 재조사에 착수했다. 민주당 민생연석회의가 지난 12일 발표한 20대 민생의제와 60개 정책과제에도 ▶가맹점주 단체협상권 도입 ▶온라인플랫폼거래공정화법 제정 ▶자영업자 육아휴직제 도입 등 ‘자영업 리포트’가 제언한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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