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피했다가 집 다 타버리면…" 고령층 사망 이래서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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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산불 나흘째인 지난 25일 오후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에 강풍이 불어 주변 산이 화염에 휩싸인 가운데 주민들이 대피 명령이 내려진 마을을 떠나고 있다. 뉴스1
닷새째 이어지고 있는 초대형 산불이 ‘역대급 피해’를 초래했다. 지난 25일 갑자기 강해진 바람에 올라탄 산불이 경북북부권을 휩쓸어 최소 15명의 주민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안동에서 1명, 청송 3명, 영양 5명, 영덕 6명 등이다. 이렇게 많은 사망자가 나오게 된 이유는 뭘까.
주목해야 할 점은 사망자 대부분이 60~80대 고령층이라는 점이다. 고령층의 경우 노환이나 질병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경우가 많고 재난안전문자를 확인하지 못해 제때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망자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
26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전날 밤 경북 영양군 석보면 한 도로에서 50~60대 남녀 시신 4구가 발견됐다. 마을 이장 내외가 처남댁을 구해 차에 태우고 가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송군에서는 70~80대 노인 2명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청송읍 외곽에서도 불에 탄 60대 여성의 시신이 추가로 확인됐다. 청송에서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대피하던 70대 여성도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 의성군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지난 23일 의성군 산불 현장 인근 마을에서 주민들이 대피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동시 임하면과 임동면 주택 마당에서 50대와 7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고 50대 여성의 남편도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영덕 한 실버타운시설에서 차량이 화염에 휩싸여 폭발하면서 숨진 입소자 3명도 모두 80대였다.
고령의 주민들이 대피 명령을 듣지 않고 집을 지키려고 하는 일도 사상자를 늘리는 데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5일 산불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을 당시 주민 대피 활동을 했던 한 소방대원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주민들이 많았다. 너무 위험한데 집에서 버티려고 해서 경찰이 강제로 주민을 끌어낸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안동시 길안면에서 만난 이모(65)씨의 경우에도 “마을에 계속 차량이 다니면서 대피를 하라고 하는데 그냥 집에 있었다”며 “만약 대피를 했다가 집이 산불에 모두 타버리면 누가 책임을 져 주느냐”고 했다.
거동 불편하고 대피 거부 많아
경북은 다른 지역보다 노년층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대피가 빠르지 못하고 당국의 대피 명령을 잘 따르지 않는 노년층의 특성을 고려해 보다 적극적인 산불 대응이 이뤄졌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과하게’ 대처해 적어도 자택에 머물다 질식해 숨지는 일은 막았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경북 의성 산불 확산으로 영양군에 대피 명령이 내려진 가운데 26일 오전 경북 영양군 영양읍 영양군민회관에 인근 주민들이 대피해 있다. 뉴스1
산불이 심해지기 전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키는 것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가장 먼저 제기된다. 25일 오후 강풍 예고가 있었음에도 오전 시간에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대피시키지 않고 강풍이 몰아쳐 산불이 빠르게 번지는 시점에야 실제 대피하게 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실제 산불이 빠르게 번지고 있던 이 날 오후 5시 30분쯤 안동시 임하면 일대에는 바람에 불씨가 날아다니고 매캐한 연기가 마을 전체를 뒤덮어 시야를 가리는 상황에서 마을 이장이 화물차를 타고 대피방송을 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영양군 석보면에서 숨진 채 발견된 마을 이장 내외도 산불이 진행되는 가운데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키려고 하다가 봉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약자부터 순차적 대피 필요”
산불이 극도로 심해진 상황에서 한꺼번에 대피 명령을 내려 극심한 차량 정체가 빚어진 것도 문제로 꼽힌다. 안동시가 25일 오후 5시 모든 시민에게 대피 명령을 내린 직후 산불을 피해 이동하려는 차량이 일시에 도로로 나오면서 산불 현장과 인접한 지역은 혼란에 휩싸였다.

지난 25일 오후 경북 안동 전역에 강풍이 불어 산불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가운데 안동 전 시민에게 대피령이 내려져 도로 곳곳이 통제되자 남례문 인근 중심 도로가 차량으로 정체되고 있다. 뉴스1
거센 불길을 피해 후진하거나 역주행하는 차량이 추돌사고를 일으키기도 하고 크고 작은 접촉사고 때문에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산불이 심한 구간에서 차량 통행이 막힐 경우 불길이 옮겨붙거나 연기를 마실 수 있어 위험하다. 게다가 야간에는 시야 확보가 어려워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더욱 높기 때문에 늦은 오후가 아닌 낮 시간에 대피 명령을 내렸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또 경북북부지역 특성상 교통이 불편하고 산세가 험하다는 점도 대피가 늦어진 이유로 꼽힌다. 사망자가 발생한 지역이 대부분 농촌이나 산촌 마을로, 대피를 하려면 좁고 구불구불한 임도나 국도를 따라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 유일한 탈출로를 산불이 덮칠 경우 고립될 수밖에 없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피를 시킬 때 일시에 대피하는 것보다 노약자부터 먼저 순차적으로 대피를 시켜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며 “대피 명령을 내릴 때도 단순히 위험하니 대피하라는 식으로 방송을 하기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이 있고 불길이 어디까지 왔다는 등의 정보를 함께 전달해줘야 빠른 대피를 유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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