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국내 사과 60% 생산했는데…안동·청송 등 재배지 초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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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경북 안동시 임하면 한 사과밭에 산불이 붙어 피해가 난 모습. 사과나무 밑동이 까맣게 그을려 있다. 김정석 기자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산불이 휩쓸고 간 지역 대부분은 사과 주산지로 꼽히는 곳들이다. 안동과 청송 등 경북 북부지역은 전국 사과 재배면적 3만3788㏊ 중 약 60%인 2만46㏊를 차지하고 있다. 생산량도 지난해 전체 사과 생산량 46만t 중 경북이 28만6000t(62.2%)로 압도적으로 큰 비중이다.

사과 주산지 휩쓸고 지나간 산불

경북 북부지역 중에서도 가장 사과 재배면적이 넓은 안동은 이번 산불로 큰 피해가 났다. 지난 27일 오후 경북 안동시 길안면 한 사과밭은 주변 산림이 시커멓게 불타 있었다.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지난 25일 오후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동해안에 있는 영덕까지 치달을 때 그 경로 한가운데 있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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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경북 안동시 길안면 한 사과밭에서 산불에 타버린 사과가 쌓여 있다. 김정석 기자

솔숲 사이에 위치해 있던 사과밭은 언뜻 보기에는 바닥에 푸른 잡목도 어느 정도 살아 있고 나무도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사과나무 대부분의 새순이 탄 모습이었고 상당수 나무들이 밑동 부분이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다.

또 솔숲 근처에 세워져 있던 창고, 박스 안에 넣어뒀던 사과도 모조리 타버렸다. 사과나무 인근에 설치된 대형 물탱크도 뜨거운 불길에 엿가락처럼 녹아 있었다. 근처 숲에서는 완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 때문에 낙엽 밑에서 하얀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농장주 조윤진(61)씨는 “이제 사과나무에 새순이 올라오고 1년 농사를 시작하게 되는 시기인데 갑자기 산불이 덮쳤다”며 “사과나무 2000여 그루 중 대부분 새순이 타버려 싹을 틔우지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일부는 자랄 것으로 기대하고 물도 주고 농약도 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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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경북 안동시 길안면 한 사과밭에서 인근에 설치된 물탱크가 산불에 녹아내린 모습.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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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경북 안동시 길안면 한 사과밭에서 농장주 조윤진씨가 밭 주변 산불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김정석 기자

“사과농사 새 시작에 5년 걸려”

인근 마을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황창희(58)씨도 애지중지 키우던 사과나무가 산불에 몽땅 타버렸다. 한창 1년 농사를 준비해야 할 시기지만 황씨는 집과 승용차를 모두 잃고 마을에서 유일하게 산불 피해가 나지 않은 집에 얹혀 지내는 처지가 됐다.

황씨는 “사과나무가 모두 타 죽었는데 새로 나무를 심고 기르면 상품 가치가 있는 사과가 나올 때까지 최소 5년이 걸린다”며 “월급 받고 사는 회사원도 아니고 5년 동안 아무 소득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 지난주에 농협에 대출 받아 산 2600만원짜리 농기계도 다 탔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안동과 청송, 영양 등지에 사과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농민들의 수가 적지 않다”며 “산불 피해로 사과밭과 삶의 터전을 잃은 농민들이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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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경북 안동시 길안면 한 사과밭에서 산불에 타버린 사과나무 새순을 농장주가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피해가 없는 일반 새순 모습. 김정석 기자

특히 이맘때는 사과 가격의 안정을 위해 각 지자체가 저품위 사과를 수매하는 시기여서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사과도 많았다고 한다. 결국 올해 농사는 물론 지난해 수확해 둔 사과까지 합쳐 2년치 농사를 한순간에 망치게 된 셈이다.

과수·가축 피해 집계 시작 못해

산림당국과 지자체는 현재 산불에 따른 인명과 시설물 피해를 집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과수나 가축 등 피해는 집계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모의 산불이 한꺼번에 여러 지역에 걸쳐 발생하면서 당장 급한 것부터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과수 피해를 집계하는 데는 긴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한편 지난 22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야산에서 성묘객 실화로 추정되는 산불이 발생한 후 일주일째인 28일 산림 4만8150㏊ 규모에 피해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를 뛰어넘는 역대 가장 큰 규모다. 서울 면적(6만523㏊)의 80%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금까지 경북에서 주택 2221채와 공장 3동, 창고 68동 등을 비롯해 총 2412곳의 시설물 피해가 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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