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집도 곶감 건조장도 비닐하우스도 다 타”…넋나간 주민들
-
2회 연결
본문
30일 오후 2시30분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 1·2층 합쳐 연면적 54평(178㎡) 규모의 건물이 엿가락처럼 구부러져 주저앉아 있었다. 패널 지붕과 경량 철골로 만들어진 건물은 화마(火魔)를 견디지 못했다. 탄내가 진동하는 이 건물은 60대 부부가 15년째 살던 일터이자 보금자리였다. 1층엔 가정집, 2층엔 곶감 건조장이 있었다.
곶감 농사와 양봉을 하던 집주인 김모(60대)씨는 “다 타버렸다.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막막하다”며 “어떻게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나”고 답답해했다. “지금 (감나무에) 거름도 주고, 나뭇가지도 자르고 다듬어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던 김씨는 “벌통도 절반이 불탔다”고 혼잣말을 했다. 김씨의 집뿐 아니라 중태마을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대피 열흘 만인 이날 하나둘 돌아온 주민들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마을 손경모(68) 이장은 “거름을 주고 가지를 치는 등 한 해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인데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며 “당장 주민들이 잠잘 곳도 없다”고 했다.

신재민 기자
사정은 경북도 비슷했다.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등 산불이 지나간 5개 지역 중 가장 시설물 피해가 많은 안동시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동안동농협 임하지점은 폭격을 맞은 듯 건물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있고 내부가 새카맣게 탄 모습이었다. 농협 건물 뒤편 마을에도 멀쩡한 집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교회의 창문이 깨졌고, 비닐하우스는 불길에 비닐이 녹아내려 뼈대만 남아 있었다. 마을 초입의 한 주택은 지붕만 남기고 폭삭 내려앉았다. 경북에서만 이번 산불로 주택 3239채가 전소했다.
경남과 경북을 중심으로 발생한 11개 대형 산불 진화가 30일 완료됐다. 고기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이날 “지난 21일부터 경남과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총력 대응 끝에 주불을 모두 진화했다”고 밝혔다. 마지막까지 속을 썩인 경남 산청의 주불 진화에는 213시간34분이 걸렸다. 2022년 3월 울진·삼척 산불(주불 진화 213시간43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긴 산불로 기록됐다.
불은 껐지만 인명과 재산 피해는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중대본에 따르면 산불영향구역은 총 4만8239ha에 이른다. 서울 면적의 약 80%에 이른다. 주택 3397동, 농업시설 2114건이 전소했고, 국가유산 피해도 30건에 달한다. 또 사망자 30명을 포함해 모두 7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경계를 늦추기엔 이르다. 중대본 측은 “건조한 대기 상황과 바람이 지속하고 있는 만큼 잔불 처리와 뒷불 감시는 진화대원과 헬기를 동원해 이어갈 방침”이라고 했다.
정부는 또 ‘범정부 복구대책지원본부’와 ‘중앙합동피해조사단’을 구성해 산불 피해 복구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고기동 중대본부장은 “산불로 삶의 터전을 상실한 이재민의 조속한 일상 회복과 피해 복구를 위해 최고 수준의 지원을 추진하겠다”며 “관련 부처와 지자체는 추가 산불 방지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산불 발생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