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60대 아들, 노모 업고 달려…노모는 등 뒤에 화상”
-
2회 연결
본문

김이듬 시인이 산불로 피해를 입은 영덕 석리의 집 앞에 서있다. [사진 본인 인스타그램]
경북 산불로 인한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이듬(56) 시인이 SNS를 통해 산불이 할퀴고 간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의 피해 상황을 전했다. 2년 전 영덕군 석리에 귀촌한 김이듬 시인은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잿더미가 된 마을 사진과 함께 “어디서든 눈부신 바다가 보이던 평화로운 마을, 한국의 산토리니”가 전소했다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겪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적었다.
시와세계작품상, 김춘수시문학상 등을 받은 김이듬은 2001년 등단해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등을 펴낸 중견 시인이다. 2020년 시집 『히스테리아』 영미 번역본으로 한국 작가 최초 미국문학번역가협회 전미번역상을 수상했다.
김 시인은 3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 중 “여든 넘은 노모를 업고 대피한 62세 이웃의 소식도 들었다”며 “불길을 등지고 내려오는 와중에 노모의 등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불길이 삽시간에 번진 급박했던 상황”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석리 주민들은 25일 밤 9시쯤 “입던 옷에 숟가락 하나도 못 챙기고 어선 배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와 해경 배로 옮겨 탄 후 학교 강당으로 피신”했다고. 지금은 영덕의 한 청소년 수련장으로 일부 이재민들이 옮겨진 상태다.
그는 이어 “산불은 수습됐지만 아직 매캐한 냄새가 온 동네를 꽉 채우고 있다”며 “잿더미에서 나오는 독한 공기와 연기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고 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김이듬 시인은 3년 전 친구가 사는 경북 영덕을 찾아 귀촌을 결심했고 2년 전 석리에 자리를 잡았다. 석리는 해안 비탈면에 집들이 붙어있는 모습이 갯바위에 따개비가 달라붙은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해서 ‘따개비 마을’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마을 비탈길 사이사이로 대나무가 어우러진 풍경과 스노클링, 낚시 명소로 유명하다.
김이듬 시인은 “몇 해 전 이 작은 해변 마을에 처음 왔을 때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비경이 펼쳐졌다고 일기장에 썼다”며 “체한 제 손끝을 따주시며 ‘식탐 내면 안 되지’ 하셨던 아랫집 할머니는 불길에 돌아가셨다”고 자신의 SNS에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산불 피해는 뉴스에서 보시는 것보다 수만 배 심하고 피해는 숫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상심하고 실의에 빠진 분들께 용기를, 목숨 잃으신 분들께 깊은 애도를, 도움을 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