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대기업 사표→벤투의 그림자→피구형이 밥사주는 남자
-
4회 연결
본문

축구대표팀 통역 출신 이윤규(오른쪽) 넥슨 부장은 축구 레전드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포르투갈에서 피구의 식사 초대를 받은 이 부장.[사진 이윤규]
이윤규(40) 넥슨 FC마케팅1팀 부장은 한국 축구대표팀 통역 출신으로 축구팬들 사이에서 알려져 있다. 그는 2014년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 시절 스페인어 통역 모집에 지원해 수십대의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슈틸리케 감독과 ‘후임’ 파울루 벤투 감독 옆에서 분신 같은 존재로 활약했다. 벤치에서도, 기자회견에서도, 휴식날에도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대기업 주재원으로 근무한 아버지를 따라 영국·스페인·브라질·독일에서 자란 그는 미국 인디애나주 퍼듀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3개국어(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영어)를 구사한다. 슈틸리케 감독과는 스페인어, 벤투 감독과 포르투갈어로 대화했다. 두 감독 모두 이윤규 부장의 이름 끝자를 따서 편하게 “큐”라고 불렀다.
2010년 대기업 현대차에 입사해 글로벌 인사지원팀 대리로 근무했다. 시간을 쪼개 축구 에이전트 자격증을 땄고, 한국프로축구연맹 축구산업 아카데미 1기도 수료했다. 그는 2011년 휴가를 반납하고 모기업이 현대차인 프로축구 전북 현대에서 축구 관련 일도 했다. 그러던 중 2014년 축구 국가대표팀의 계약직 통역 모집공고를 보고 과감하게 현대차에서 사표를 냈다. 이직을 만류한 아내에게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설득한 끝에 축구협회로 이직했다.

축구대표팀 통역 시절 이윤규 부장이 벤투 감독의 지시를 선수에게 전하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입사 후 약 1년 반 정도는 대표팀 통역업무만 하다가 이후 대표팀 행정운영을 담당하는 팀매니저까지 맡았다. 인상이 강한 편이라 별명이 ‘앵그리 버드(늘 화가 나있는 새)’인데 싹싹한 성격으로 관계자들과 두루 잘 지냈다.
그런데 10년 동안 몸담았던 대한축구협회를 떠나 지난해 4월 한국 최고의 게임회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넥슨으로 이직했다. 이 부장은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2020년 코로나19가 터지고 축구협회도 모든 게 올스톱됐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전환이 훨씬 가속화됐고 게임사를 비롯한 IT업계는 호황기를 맞았다. 커리어를 확장할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실제 축구를 세계관으로 하는 축구게임에서 또 다른 기회와 경험을 쌓을 수 있으리라 판단해 이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윤규 차장과 벤피카의 후이 코스타 회장. [사진 이윤규 차장]
현재는 넥슨의 FC그룹 내 FC마케팅1팀에서 축구와 연계된 이벤트와 대회 개최, 파트너십, 마케팅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간 대표팀의 운영 경험, 전북과 2007년 포르투갈 벤피카에서 인턴십을 하며 어린팬들을 ‘록 인(Lock In)’시키는 방법 등을 배운 게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지난해 10월 넥슨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주최한 FC온라인·모바일 이벤트 경기 ‘아이콘 매치’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디디에 드록바, 티에리 앙리, 카카, 카를레스 푸욜, 박지성 등 월드클래스 출신 선수들이 무려 35명이나 총출동했다. 이 부장은 경기장 대관부터 행사·선수단 운영, 호스피탈리티 등을 맡아 성공 개최를 도왔다.

넥슨 이윤규 부장과 칸나바로. [사진 이윤규]
이 부장은 “이렇게 많은 스타들을 다 한자리에 모아 놓고 이 정도 규모의 경기를 개최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대표팀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스타들이 만족하고 갈 수 있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신경 썼다”고 했다. 레전드 스타들 3분의 1 이상이 “너무 환상적이었다”며 이 차장에게 개인 연락처를 주며 유럽에 오면 꼭 전화하라고 했다.
이 부장은 “올 초 스페인 마드리드에 갈 때 루이스 피구(포르투갈)에게 연락을 했는데 본인의 골프행사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해줬다. 피구가 행사에 참석한 지인들에게 아이콘매치에 대한 칭찬을 해줘 뿌듯했다”며 “영국 런던에 방문했을 때는 리오 퍼디난드(잉글랜드)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하며 아이콘매치에 대한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엘클라시코 레전드 매치가 열린 일본에 갔을 때는 히바우두와 파비오 칸나바로도 만났다. 내가 축구게임 FC온라인에서 중용하는 ‘발롱도르 수상자’ 칸나바로가 반갑게 맞아줘 기뻤다. 히바우두는 경기 후 저녁식사를 따로 초대해줬다”고 했다. 아이콘 매치에서 또 다른 에피소드로는 백화점에 동행한 카를로스 테베스(아르헨티나)가 골프 매장에 있는 층을 다 돌면서 거의 모든 매장에서 골프 의류를 구매하는 걸 보고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이윤규 통역이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후 라커룸에서 선수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이 부장은 한국 대표팀에서 함께했던 벤투 감독과 FC온라인 명장로드 유튜브 인터뷰를 통해 재회하기도 했다. 재택 근무했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달리 경기도 일산에서 거주했던 벤투 감독은 “난 한국대표팀 감독이기에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게 중요했다. 상근직은 아니지만 파주훈련장에 가야해서 근처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벤투 감독의 MBTI(성격유형지표)는 모르지만 J(계획형) 성향이 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계획을 세밀하게 짜고 한 번 세워지면 벗어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아시아 지역의 특성상 경기를 준비할 때마다 여러가지 변수가 자주 발생해 조율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2019년 10월 북한 평양 원정 경기는 경기 개최지가 한달 전까지도 확정되지 않는 등 큰 변수들이 많았다”고 했다.
당시 방북 가능성을 먼저 예상한 이 부장이 외교부의 도움을 받아 2달 전에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에 먼저 가서 선제적으로 비자 발급 절차와 대표팀이 체류할 숙소 등을 확인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할 때 필요한 선수단 버스는 이부장의 현대자동차 근무 시절 담당 임원이 당시 북경현대 총경리로 재직하는 점을 활용해 무료로 제공 받았다. 이렇게 변수들을 최대한 줄여나가면서 벤투 감독과 합을 맞춰 나갔다.
선수단은 경유지 베이징에서 주한중국대사관에 휴대폰을 반납하고 북한에 들어갔고, 평양 도착 후 공항에서 짐 검사 때 책 한 권의 내용까지 싹 다 확인해 입국에만 4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당초 숙소로 이동 뒤 현지 적응 훈련을 하려고 했지만 공항에서 바로 훈련장으로 이동하는 등 변수의 연속이었다. 보위부 30명이 선수단을 감시하고 버스에서 출석을 부르기도 했다. 이 부장은 “북한에서 좋았던 점 딱 하나는 수퍼스타 손흥민(토트넘)을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해 사인 요청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다”는 뒷얘기도 전해줬다.

브라질 축구 레전드 히바우두와 식사를 함께한 이윤규 넥슨 부장. [사진 이윤규]
게임회사 넥슨에서 새로운 도전 중인 이 부장은 “이 곳에는 나 말고도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플라스틱 제조회사에 있다가 오신 분, 택시 사업을 하시다가 오신 분도 있다. 똑같은 것도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분들이 많기에, 게임 회사에서 ‘아이콘 매치’ 같은 행사도 성공 개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부장은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축구협회 통역과 팀매니저를 거쳐 게임회사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다. 통역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조언해달라고 하자 그는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통역은 계약직이 많고 처우도 생각보다 좋지는 않은 편이다. 통역만 하기보다 역량을 키우고 확장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도 통역으로 시작했지만 대표팀 팀매니저도 했고, 나아가 국제경기시 경기운영을 총괄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및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감독관도 역임했다”고 했다. 이어 “절대 언어 실력 하나 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자신 만의 전문 분야가 있어야 하고 그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췄을 때 비로소 언어 능력은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해줬다.

런던에서 퍼디낸드(오른쪽)를 만난 이윤규 넥슨 차장. [사진 이윤규]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