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핵화는 사문화된 개념" 북미 협상 기준 다시 못박은 김여정

본문

1744171159887.jpg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9일 담화를 통해 “비핵화는 사문화된 개념”이라며 “유일한 해법은 우리에 대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2기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다양한 입장 발표를 통해 비핵화 목표를 낮추라고 미 측을 압박해 온 북한이 김여정으로 ‘급’을 높여 북한이 바라는 북·미 대화의 기준을 다시 확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여정은 이날 담화에서 최근 한·미·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을 두고 “우리의 비핵화는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다”며 “이러저러한 보자기를 씌워 이미 사문화된 비핵화 개념을 부활시켜보려고 시도하는 것 그 자체도 우리의 헌법 포기, 제도 포기를 강요하는 적대적인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일한(한·미·일)이 안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우리의 현 지위를 흔들어보려는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를 포기하고 정면 충돌을 피하는 방법을 더듬어 찾는 것 뿐”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3일 한·미·일 외교장관은 나토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강조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는데, 김여정은 약 1주일이 지나 이를 반박하는 담화를 냈다.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정상 간 통화가 이뤄진 직후 북한 고위급의 메시지가 나온 점도 공교롭다.

김여정의 담화는 내용 면에선 지난 2월 18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큰 틀에서 차이가 없었다. 당시 외무성 대변인은 트럼프 2기 미 행정부의 비핵화 원칙에 대한 입장을 처음 밝히면서 “비핵화는 미국의 근시안적인 목표이며, 실천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이제는 더더욱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낡고 황당무계한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에는 김여정이 직접 등판해 북한이 앞서 설정한 북·미 대화의 전제 조건에 보다 무게감을 실으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트럼프는 2기 정부 출범 직후부터 김정은을 수 차례 언급하며 “좋은 관계”라고 언급했으나, 미 행정부 차원에서 비핵화 원칙에는 큰 변화가 없다. 이에 북한은 대화 재개의 문턱이 이전보다 높아졌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여정이 등장했다는 건 김정은 차원에서 트럼프와의 대화 전략 또는 협상 방향에 대한 판단이 내려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짚었다.

동시에 김여정이 담화에서 ‘해법’을 거론한 점도 주목할 만 하다. 김여정은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를 포기하고 정면 충돌을 피하는 방법”을 언급했는데, 미 측이 억지력 강화를 멈추고 먼저 전향적인 대화를 제안해달라는 취지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통상 '일방적인 현상 변경 반대'는 미국이 대만에 대한 중국의 강압 정책을 비판할 때 써 온 용어인데, 이를 자신들의 방어 논리로 끌어온 점도 눈에 띈다.

이와 관련,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비핵화 원칙을 포기하고,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한 뒤 미 측의 위협 감소 조치와 더불어 핵 군비 통제 협상으로 가야 한다’는 북한의 협상 조건을 제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1,823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