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점심 6000원 뷔페 줄 섰다…치솟는 물가에 '불황형 소비'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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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의 한식뷔페 A 식당은 문전성시였다. 직장인들이 일찌감치 몰려들어 출입문 밖까지 줄이 이어졌다. 이 식당은 국과 밥, 4~5가지 반찬을 6500원에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직장에서 20분을 걸어왔다는 황모(49)씨는 “구내식당(6000원)과 가격은 비슷하고 맛은 더 좋아서 일주일에 세 번은 온다”며 “왕복 40분을 걸어야 하지만, 운동하는 셈 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1시가 지나자 60~70대 노인들이 삼삼오오 식당으로 몰렸다. 분주한 시간을 피해  왔다는 김모(65)씨는 “어지간한 식당이나 카페는 1인당 1만원이 넘어 부담이 커서 값싼 식당을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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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한식뷔페 식당에 들어가기 위한 줄이 지하 식당에서부터 지상 밖으로까지 이어져 있다. 황수연 기자

‘불황형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내수 침체로 외식과 생필품 물가가 치솟은 데다, 트럼프발(發) 관세‧환율 압박까지 더해져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다. 저가 뷔페를 찾아다니거나 할인이나 떨이 제품을 찾는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먹고 마시는 회식 대신 집에서 간단히 혼술을 즐기는 것으로 음주 문화도 바뀌고 있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가공식품 물가는 3.6% 올라 평균 상승률(2.1%)을 웃돌았다. 2023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 상승이다. 외식은 3% 상승해 두 달 연속 3% 이상 올랐다. 직장인들의 대표 점심 메뉴인 비빔밥(1만1308원), 냉면(1만2115원)은 1만원을 훌쩍 넘는다. 커피(8.3%), 빵(6.3%), 햄과 베이컨(6.0%) 등도 많이 올랐다.

식품업체에 햄버거‧커피‧치킨 등 프랜차이즈까지 일제히 가격 인상에 나서자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7일 물가 상승 요인이 된 가공식품 가격 인상과 관련해 '담합이나 불공정 행위가 있었는지 철저히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유통업계에선 “그간 정부의 압박에 눌려있다가 눈치 볼 컨트롤타워가 없으니 가격을 올리기는 좋은 기회인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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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외식물가 고공행진에 저가 뷔페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7000~8000원대 한식뷔페, 1만원대 샤브샤브뷔페, 2만원대 고기뷔페 등이 크게 늘었다. 고기뷔페인 고기싸롱은 2020년 창업 이후 4년 만에 매장이 130여 곳으로 늘었고 애슐리퀸즈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40%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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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한식뷔페 식당 내부가 밥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황수연 기자

장바구니 풍경도 달라졌다. 떨이 제품이나 할인 제품 판매가 부쩍 늘었다. 마켓컬리가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야채를 모아서 파는 못난이 채소 ‘제각각’은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두배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지난 3~7일 연어회를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배 넘게 팔았다. 최대 50% 할인을 한 덕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평소 구매를 망설이던 제품들이 할인하면 ‘쌀 때 쟁여놔야한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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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음주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맥주 매출은 4년 전만 해도 도매(음식점 등 유흥업체 소비) 비중이 60%를 넘었다. 하지만 지난해는 소매(할인점 등 가정 소비) 비중이 60%로 늘었다. 식당들도 '저녁 장사' 활성화를 위해 6000원을 받던 맥주‧소주값을 2000원 선까지 내리고 있다.

기능에는 이상이 없지만, 외관에 흠집이 있거나 한번 팔렸다가 반품된 제품인 리퍼비시(Refurbished) 상품도 많이 찾는다. 롯데홈쇼핑이 리퍼나 전시상품 등을 최대 90% 싸게 판매하는 ‘창고털이’의 지난해 주문 건수도 전년 대비 40% 늘었다.

유통업계에선 최근 발생한 경북 지역 산불로 먹거리 인플레가 신선식품까지 번질 것으로 우려한다. 국내 사과 면적의 9%가 소실됐고 자연산 송이는 사실상 올해 수확이 없다고 봐야 하는 상황이라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끼니는 매일 먹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가계 부담은 확 커진다”며 “관련 부처가 수급 상황‧가격변동을 수시로 확인하고 안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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