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거리의 천사…유족도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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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키지 않아도 솔선수범하며 쓰레기를 주웠던 고(故) 권호석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 지난 달 28일 별세한 그의 뜻을 기려 가족들은 부의금을 일부 기부하기로 했다. [뉴스1]

초록색 새마을운동 모자를 쓴 남성이 비닐봉지와 집게를 들고 전국 축제장·행사장을 돌며 담배꽁초·오물 등 쓰레기를 주웠다.

1969년부터 50년 넘게 고향인 전북 장수 오일장은 물론 풍남제·전주세계소리축제 등 인파가 몰리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묵묵히 환경 보호를 실천했다. 흰 티 위엔 검은 먹으로 ‘서로서로에게 양보하고 기초 질서 잘 지켜서 문화 국민 됩시다’ ‘아름다운 우리 고장, 자연환경 깨끗하게, 내가 머물던 자리는 깨끗이 치우고 갑시다’ 등의 문구를 썼다.

1년 내내 쓰레기를 주우면서도 틈틈이 폐지 줍기와 농촌 일손 돕기로 모은 돈과 교통비·식사비를 아껴 매년 이웃 돕기 성금과 장학금을 기부했다. 2007년 ‘제3회 초아의 봉사대상’ 시상금으로 받은 1000만원도 전액 지역 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지난달 28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권호석 할아버지 이야기다.

장수군은 10일 “생전에 ‘거리의 천사’ ‘청소 할아버지’로 불리던 권호석씨 유족이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성금 500만원을 기탁했다”고 밝혔다. 부인 김정순(77)씨와 오용·오성·오필·오미·향미 등 5남매가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 부의금 일부를 떼어내 기부했다.

유족 측은 “고인의 명복을 빌어준 모든 분에게 감사한 마음과 고인의 평생 바람을 실현하는 뜻을 담아 기부한다”고 밝혔다. 최훈식 장수군수는 “아름다운 나눔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생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꾸준한 선행을 베푼 고인의 뜻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소중히 쓰겠다”고 말했다.

장수군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13세 때인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에 들어가 조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싸우려 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세 차례나 입대를 거부당했다.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곧 애국”이라는 믿음으로 30세 때 ‘청소 봉사’를 시작했다. 소작농의 살림살이는 팍팍했지만, 부인 김씨는 생계를 책임지다시피 하면서도 말 없이 남편을 응원했다고 한다. 5남매도 모두 장학생으로 대학까지 마치는 등 올곧게 성장했다는 게 장수군의 설명이다.

고인은 고령에다 지병이 악화해 병원에 입원 중이던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에도 취약계층을 위해 써달라며 각각 90여만원과 115만원을 장수군에 기탁했다. 고인이 쓰러지자 천천면 마을 주민들은 권씨를 대신해 천변과 시장을 돌며 쓰레기를 주웠다. 지난달 29일엔 ‘고 권호석 어르신을 기리는 장수군민 추모제’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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