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층간소음 갈등에 살인·방화·강간…더 잔혹해지는데, 대책은 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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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불이 난 아파트에서 과학수사대원들이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 방화 사건 용의자가 층간소음 문제로 범행을 벌였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 층간소음에서 시작해 범죄로 이어진 사건이 급증하면서 적극적인 대책 모색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2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발생한 방화 사건 용의자 A씨(61)는 불을 지른 아파트에서 지난해 11월까지 살며 위층 주민과 층간소음 갈등을 빚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씨가 윗집을 향해 천장을 둔기로 치는 등 소음을 유발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A씨는 집에서 나오기 두 달 전인 지난해 9월 위층 주민과 몸싸움까지 벌였고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생긴 원한이 범행 동기일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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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소방 등 관계자들이 지난 21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은 해마다 늘고 있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층간소음 관련 전화 민원 접수는 2012년 8795건에서 지난해 3만 3027건으로 약 3.8배 늘었다. 같은 기간 1차 통화 상담으로 해결되지 않아 2차 상담까지 신청한 사례는 1829건(2012년)에서 7033건(2024년)으로 증가했다. 방문 및 측정 상담까지 이어진 사례도 377건(2012년)에서 1888건(2024년)으로 늘었다.

단순 민원을 넘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월 경기 양주 소재 한 빌라에선 40대 남성 B씨는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던 이웃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지난 17일부터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2023년 5월엔 경기 수원 소재 한 빌라에서 40대 남성이 옆집에 살던 30대 남성을 흉기로 살해해 같은 해 11월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이들 모두 조사 과정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는 이유로 다투다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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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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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층간소음 범죄의 실태 및 특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층간소음이 원인이었던 범죄 중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례는 2013년 43건에서 2022년 125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연구소가 층간소음으로부터 비롯된 범죄의 1심 판결문 734건을 분석한 결과 살인(미수 포함) 62건, 방화 9건, 강간 2건 등 강력범죄가 전체의 약 10%(73건)를 차지했다. 가장 큰 비중은 폭행·상해 등 폭력범죄(420건·70.5%)가 차지했다. 2021년부터 2023년 4월까지 층간소음 관련 112 신고는 총 13만7912건에 달하는데, 하루 평균 약 160건의 신고가 접수되는 셈이다.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양상도 잔혹해지면서 적극적인 방안 모색이 필요하단 제언이 나온다. 범죄심리학 박사인 김성희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현재 층간소음 관련 민원을 해결하는 데 기간이 일반적으로 3개월 이상 걸린다”며 “정부 차원에서 조기에 층간소음 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인력을 충원하거나 전담 기관을 만들어 대처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층간소음 발생 초기 단계부터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단 의견도 있다. 현행 112 신고 코드 분류 기준엔 층간소음 분쟁 관련 별도 코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112 신고가 들어오면 ▶중요범죄 ▶기타범죄 ▶교통 ▶질서유지 ▶기타경찰업무 ▶타 기관 등으로 분류하는데, 층간소음은 이중 ‘타 기관’으로 분류된다. 경찰의 주요 소관 업무가 아니라는 취지다. 김 연구관은 “층간소음 분쟁에 대한 별도 신고 코드를 신설해서 동일 인물이 여러 차례 반복된 신고를 할 경우 경찰이 해당 사안을 집중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에선 소음을 단순 사적 분쟁이 아닌 공공질서를 위반하는 행위로 보고 엄격하게 제재한다. 미국 워싱턴 D.C.에선 주(州) 조례에 따라 층간소음 유발 행위에 대해서 250달러(약 35만 6350원) 이하의 벌금 또는 90일 이하 구류 처분한다. 독일의 경우 연방질서위반법 제117조에 ‘이웃을 괴롭히거나 타인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소음을 낸 사람에게 최대 5000유로(약 819만 7850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여러 차례 신고가 접수될 경우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층간소음 지속 기간과 이웃 간 물리적 충돌 여부 등 과거 이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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