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교황, 강자에게 굽히지 않고…약자에게 더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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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휴 전 주교황청 대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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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정종휴 전 대사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정종휴(75) 전 주교황청 대사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각별했다. 2016년 12월부터 두 해에 걸쳐 로마에서 대사로 머물며, 교황을 가까이서 또 멀리서 접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 중인 정 전 대사와 22일 밤, 한 시간 동안 전화 인터뷰를 했다.

교황과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16년 12월이었다. 주교황청 대사로 부임하면 신임장을 제정한다. 그때 교황 독대 기회가 있다. 저에게는 20분 시간이 주어졌다. 10분은 미리 정한 이탈리아어로 말씀을 하시고, 나머지 10분은 독일어로 교황님과 대화했다.”
주로 어떤 대화였나.
“외교관의 관례상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교황님은 큰 관심을 보이셨다. 한 마디로 ‘평화의 사도’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이듬해 1월에 교황청에서 교황의 연두교서가 있었다. 교황은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170명이 넘는 각국 외교관들이 참석했다. 20분간 연두교서를 낭독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각국 대사들과 악수를 했다. “외교관 수가 워낙 많아서 한 사람당 30초 정도였다. 가볍게 악수하고, 인사만 했다. 그런데 제 차례가 됐을 때는 달랐다.”

어떻게 달랐나.
“교황께서 만면에 미소를 띠며 제게 다가왔다. 그리고 독일어로 ‘당케, 당케, 헤르찌르케 당케(Danke, Danke, Herzirke Danke!)’라고 하셨다. ‘고맙다, 고맙다, 진심으로 고맙다’란 뜻이다. 주위에 있던 다른 나라 대사들이 내게 물어올 정도였다. 한 손으로 악수만 하시는데, 당신은 왜 두 손을 잡고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시나.”
교황의 가장 큰 무기는 무엇인가.
“이분이 가진 최고의 덕목은 ‘용기’라고 본다. 교황님은 강자에게 굽히지 않았고, 약자에겐 더욱 약한 자가 되려 했다. 그래서 강자를 향한 개혁과 약자를 향한 사랑이 늘 함께 갔다.”
교황의 용기,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당신의 판단이 잘못됐다 싶으면, 그다음 날이라도 폐지할 수 있는 용기다. 교황으로서 보통 용기가 아니다.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께도 그 말씀을 자주 드렸다.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발휘하신 크나큰 용기가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고 본다.” 파롤린 추기경은 현재 차기 교황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인물이다. 

◆정종휴 전 대사=1950년생. 전남대 법대 졸업. 일본 교토대 법학 박사. 주교황청 대사 역임. 꽃동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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