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중 넘어 일본·인도·유럽·호주·캐나다와 연대 강화해야

본문

트럼프 2.0 시대의 대외정책과 한국 외교의 나아갈 길

17457672552882.jpg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첫째와 둘째)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성턴DC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에서 스콧 베센트 미국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의를 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폭탄을 쏟아내며 ‘미국 우선주의’를 거침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과는 말 그대로 관세 전쟁에 돌입했으며, 한국을 포함한 핵심 동맹들도 트럼프발 불확실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 더해 ‘적대적 두 국가론’과 핵무기를 앞세운 북한의 공세까지 날로 심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 마련을 위해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산하 한반도포럼은 지난 25일 ‘트럼프 2.0 시대의 대외정책과 한국 외교의 나아갈 길’을 주제로 집중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지난달 19일 ‘트럼프 2.0 시대의 한·미 동맹과 북·미 관계’의 후속 토론이다.

트럼프의 ‘중국 세력권’ 인정 경계해야

17457672554307.jpg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발제)=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당신은 카드가 없다”라는 말을 여섯 번 반복했다. 트럼프가 말하는 ‘카드’는 군사력과 경제력 등 권력을 의미한다. “힘이 강한 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힘이 약한 자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고통을 감당할 뿐”이라는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의 말이 트럼프 2기에서 생생한 현실이 됐다. 권력 중심적 사고를 지닌 트럼프는 자유주의 세계질서 유지를 위한 미국의 리더십을 저버릴 뿐 아니라 그 기반인 동맹 체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주둔을 비롯한 한국 안보 보장에도 회의적이다. 한국으로선 트럼프의 시각을 바꿔 기존의 핵 확장억제 공약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선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속에서 한국과 동맹이 미국에 중요한 자산이라는 점을 트럼프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한편 트럼프는 현재 중국을 거세게 몰아붙이지만, 어느 순간 중국의 아시아 내 세력권을 인정해주는 ‘대타협(grand bargain)’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한·미 동맹의 전략적 가치가 약화하고 한국은 방기(abandonment) 위험에 처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지난 1월 “미국이 ‘다극의 세계(multipolar world)’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극은 미국 주도의 규범에 기반하는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종식하려고 중국과 러시아가 추구해온 전략인데 이를 수용한 셈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을 넘어서서 일본과 유럽, 호주, 캐나다는 물론이고 인도 및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시장 다변화를 위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 가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자강력 확보 위해 전작권 전환 필요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북한이 최근 남북 관계와 관련해 ‘두 국가’ 접근을 취하는 배경에는 핵 보유를 통해 ‘전략 국가’로 자리매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통치의 정통성을 높이고 합리화하는 의도가 깔렸다. 선대 김일성·김정일이 강조한 민족 중심의 통일 노선이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김정은이 이를 대신할 체제 수호와 국가 발전 전략으로 두 국가론을 꺼내 든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남북한이 각각 유엔 회원국으로 활동하며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독립적인 주체로 존재하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이 두 국가론을 공식 인정할 필요는 없지만 평화적 통일이라는 최종 목표 아래 잠정적인 두 국가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실질적인 대북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트럼프 2기는 ‘아메리카 퍼스트’에서 ‘아메리카 온리(Only)’로 바뀌어 ­미국의 이익 극대화만을 최우선으로 한다. 미국의 이익이 안 되면 고립을 추구하는 ‘아메리시트(Amerexit)’ 상황이다. 특히 중국 견제를 대외 정책의 최고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 안보에 중요한 현안은 미·중 관계가 원활하고 한국도 미·중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때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트럼프 1기 때와 달라진 점은 중국의 위상이 높아졌고, 중국이 희토류 수출 중단처럼 반격할 카드도 갖게 됐다는 점이다. 금융시장 혼란과 미국 내 여론을 고려할 때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전에 미·중 간 체면을 살리는 대타협이 도출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방기 가능성에 대비해 조속히 전시작전권도 전환해야 한다.

트럼프의 오판으로 끝날 관세전쟁

17457672555704.jpg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문수 미래와가치 회장, 홍석현 이사장,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 김현동 기자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트럼프는 관세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폭탄처럼 관세를 던지는 트럼프의 모습은 그만큼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쇠퇴하고 국내 사정이 긴박해졌다는 방증이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미국은 중국의 노동력을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해왔는데, 이런 대중 포용 정책은 오늘날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미국의 관세전쟁은 중국을 과소평가한 트럼프의 오판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3만5000명의 과학자·엔지니어가 일하는 상하이의 화웨이 연구센터를 직접 둘러본 뒤 “나는 미래를 보았다. 미래는 미국에 있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중국은 연간 350만 명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인재를 배출한다. 미국 모든 전공분야의 학사·석사·박사 배출 규모와 비슷하다. 프리드먼은 “관세만으로는 번영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은 대타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초당적 경제·안보 전략을 수립해 대비해야 한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현재 중국 경제는 무역수지의 회복 없이는 국가 운영에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재정 적자가 심각한 데다 체제 불신으로 인해 소비 진작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주변국 외교’를 강화해 한국에 대해서도 ‘스마일 외교’를 펼치고 있다. 한국도 대중 외교에서 우리의 핵심 이익을 분명히 하고 중국의 공세 속에서도 외교의 공간을 넓혀야 한다.

‘미국 방기, 중국 강압’ 이중 위험 직면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한국은 냉전기에는 미국에, 그 이전에는 중국에 주로 편승했지만, 지금은 미국의 방기와 중국의 강압이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 이중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보편적인 대응은 한·일 협력 같은 지역 협력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국방력, 즉 ‘하드 파워’에 더해 이를 운용할 ‘소프트 파워’도 함께 갖춰야 한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원맨쇼’식 외교를 펼치는 트럼프 행정부에선 기존의 예측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됐다. 이는 관세뿐 아니라 북한 문제 등 여타 사안에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돌발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결정할 수도 있고, 본인의 실리에 따라 중국과 ‘대타협’에 나설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관료외교, 진영외교, 5년 단임 외교의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민간·시장·기업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민관 공조 외교’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남과 북은 공간적, 인적, 정서적으로 완전히 분리됐다. 한국의 핵 억지력 확보를 전제로 북·미, 북·일 수교가 이뤄진다면 한반도에 두 국가가 공존하는 모습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한국 보유 협상 카드 잘 활용해야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한국은 고유한 경제성장 모델과 민주화 모델을 갖고 있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선 아직 독자적인 모델을 정립하지 못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은 한국 외교의 고유한 모델이 탄생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는 결국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한·중 관계와 균형을 잡는 ‘동맹 플러스’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트럼프는 1기에 비해 더욱 파괴적인 성향을 보인다. 미국 국민의 지지에 비해 훨씬 과도하게 정책 결정권을 휘두르는 것도 우려스럽다. 미국 내 혼란과 사회적 스트레스, 반(反) 트럼프 여론을 고려할 때 트럼피즘은 단기간 내 무너질 가능성이 있어 우리도 대비가 필요하다.

▶박문수 미래와가치 회장=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오히려 시진핑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오래가기도 어렵다. 이런 외교적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은 정권 교체를 법에 따라 이뤄내며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였다. 새 정부는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각종 위기에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

▶홍석현 이사장=과거와 달리 미국은 핵심 지도층의 수준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미국에는 뛰어난 경제학자들이 많지만, 트럼프는 피터 나바로 같은 비주류 학자에게 의존하고 있다. 트럼프는 거래적 리더로 행동한다. 여기에 맞춰 협상 카드를 써야 한다. 한국은 중국 최전방에 위치한 동맹이며, 평택 미군기지라는 전략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반도체·조선·첨단 산업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K컬처’까지 갖춘 나라다. 지금 필요한 건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말한 ‘여리박빙(如履薄氷)’, 즉 살얼음판을 걷듯 신중하고 서두르지 않는 외교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2,361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