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공포의 빨간딱지, 13년새 가장 많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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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경기 불황 후폭풍

서울 서대문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50대 A씨는 은행 두 곳에서 6억원 넘게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았다. 신용보증기금 보증으로 사업자금도 빌렸다. 하지만 장사는 계속 적자였다. 결국 대출 원리금 상환을 못했고, 2023년부턴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료 등을 체납했다. A씨 집은 은행·세무서·구청·신용보증기금 등으로부터 압류·가압류가 여러 건 걸려 있어, 곧 경매로 넘어갈 위기다.

대출을 못 갚거나 전세 보증금 미반환, 세금 체납 등으로 지난해 압류·가압류된 주택이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중앙일보가 법원 등기정보광장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집합건물(아파트·빌라 등) 압류 등기 신청 건수는 18만6700건으로 2013년(20만2040건) 이후 가장 많았다. 2013년은 미분양 물량이 쌓이며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빠졌을 때다. 또 가압류 신청 건수는 14만5439건으로 2010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였다. 압류와 가압류를 합한 수치는 33만2139건으로 2011년(31만2560건) 이후 최대였다.

이는 우선 과거 집값 상승기에 무리해서 부동산을 매입했다가 높아진 이자와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2년 상반기까지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1% 전후를 유지했는데, 이 때 매입 시기를 놓칠까 이른바 ‘패닉바잉(공황구매)’에 나선 경우다. 실제 지난해 집합건물 압류와 가압류 신청 건수는 2021년과 비교해 각각 25.8%, 83.9% 증가했다. 2023년에도 압류·가압류 주택은 32만 건을 넘었다. 직전 5년(2018~22년)엔 22만~25만 건 수준이었다.

여기에 불황으로 한계에 부딪힌 자영업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신용정보원에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개인사업자는 14만129명으로 전년 대비 28.8% 늘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누계 체납액도 사상 처음으로 110조원을 넘어섰다.

경매컨설팅업체인 공유지분거래소 신용호 이사는 “불황 장기화와 고금리, 집값 하락, 자영업 폐업 증가, 전세 사기 여파 등 구조적 문제가 쌓이면서 대출을 못 갚는 차주와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임대인이 늘어난 것도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압류·가압류를 풀지 못해 경·공매로 넘어가는 집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경매로 소유권이 바뀐 집합건물은 3만1063건으로 전년 대비 50.2%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내수 부진이 이어지면서 압류·경매 주택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 올 1분기 압류 등기 신청 주택은 5만184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6% 증가했다. 경매로 소유권이 바뀐 주택은 8507건으로 같은 기간 33.5% 늘었다. 특히 부동산 시장에 찬바람이 부는 지방이 문제다. 또한 집값 하락으로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셋값)이 높아진 수도권 비인기지역에서도 압류·경매 주택이 늘어날 수 있다. 경매 시장 물량이 늘면서 낙찰가율이 하락하는 등 부동산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도 크다. 세종시의 경우 지난해 압류·가압류 주택은 2761건으로 3년 전보다 162% 증가했고, 전남과 강원·광주·부산 등지도 압류 주택 증가율이 가파르다.

신 이사는 “초저금리 시절에 소위 영끌(영혼을 끌어모은) 대출을 받은 가구와 갭투자자, 폐업 자영업자 등이 특히 위험군”이라며 “전셋값이 집값의 80%를 넘는 깡통전세가 많은 지역에서도 압류·경매 주택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자영업자 폐업, 취약계층 대출 연체 등을 줄일 수 있는 경기 활성화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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