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수목원장 “주목 고사하고 봄꽃 대혼란”…500년 광릉숲에 무슨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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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숲 국립수목원에서 주목 일부가 고사해 잎이 갈색으로 변하는 피해를 입었다. 국립수목원 제공

"주목(朱木)의 초록 잎이 갈색으로 변하는가 하면, 순서대로 피던 봄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피는 대혼란을 겪고 있어요. 20년 이상 숲을 연구한 저도 경험해보지 못한 급진적인 변화죠."

28일 경기 포천시 광릉숲에서 만난 임영석 국립수목원장은 최근 식물들의 이상 신호가 심상치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신록(新綠)이 우거진 숲속에서 마치 염색을 한 것처럼 갈변한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임 원장은 “주목 등 침엽수에서 고사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해 전국의 수목원과 협력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분석 중”이라며 “지난가을의 폭염과 폭설부터 올봄의 이례적인 추위까지 계속된 기상이변이 식물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500년 국내 최대 산림 보고…기후변화 연구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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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국립수목원장이 광릉숲 일대를 바라보면서 숲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국립수목원이 있는 광릉숲은 550여 년 이상 자연 그대로 보전된 국내 최대 산림 보고다. 조선 시대인 1468년 세조의 능림으로 정해진 뒤 사람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 극상림(생태계가 안정된 숲의 마지막 단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0년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지난해에만 44만 명이 찾을 정도로 수도권의 대표 숲으로 자리 잡은 이곳은 생물다양성이 풍부해 연구 가치도 뛰어나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의 계절 현상을 관측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36종 가을에 불시개화…봄 개화도 뒤죽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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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에 국립수목원에 불시개화한 라일락. 국립수목원 제공

광릉숲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지난가을부터다. 봄에 피어야 할 꽃이 가을인 9~10월에 피는 불시개화 현상이 36종의 식물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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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봄의 개화 시기도 급변하고 있다. 국립수목원의 분석 결과, 왕벚나무는 1년에 0.8일씩 개화가 앞당겨졌고, 진달래는 1.2일로 더 빨랐다. 생강나무는 1.0일씩 개화 시기가 빨라지는 추세다. 이렇게 나무마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다 보니 개화 간격이 줄어들거나 순서가 뒤바뀌는 등 봄꽃 시계가 뒤엉켜버렸다.

김동학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2009년부터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 개화 시기를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원래대로라면 순서대로 펴야 할 식물들이 동시에 피거나 순서가 역전되는 현상이 국립수목원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일부 희귀 식물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지리산 주변에만 서식하는 매미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반도 특산식물인 매미꽃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개화기가 40년 동안 2주 정도 앞당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조용찬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한반도는 바다로 막혀 있어서 새로운 종의 유입이 어렵기 때문에 종 다양성이 감소할 수 있다”며 “매미꽃 같은 일부 종은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붕괴되고 멸종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RNA 연구로 개화 예측 “숲에서 공존 방법 찾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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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숲이 있는 국립수목원 전경. 천권필 기자

국립수목원은 산림생태계의 기후변화 영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연구를 통해 대응 전략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전국 10개 수목원이 식물계절 관측 네트워크를 구성해 기후변화에 따른 식생 변화를 관찰하고, 시민들이 연구에 참여하는 대규모 시민 과학 프로젝트도 올 하반기에 시작한다.

식물의 RNA(리보핵산)를 기반으로 꽃 개화 시기를 예측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임 원장은 “수목원 연구를 통해 식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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