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카네이션 대신 보톡스" 달라진 어버이날…꽃산업은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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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75)씨가 운영하는 양재 꽃시장 가게 매대에 팔리지 않은 카네이션들이 놓여 있다. 김창용 기자
지난해 취직한 권모(29)씨는 올해 어머니에게 15만원 상당의 네일 아트와 페디큐어 시술을 어버이날 선물로 드렸다. 평소 미용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의 취향을 고려한 것이다. 권씨는 “어머니가 카네이션을 받는 것보다 미용 시술을 선물로 원하시는 것 같아 꽃 대신 돈을 좀 더 보태 색다른 선물을 드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모(36)씨는 허리가 아픈 아버지를 위해 어버이날을 맞아 퍼스널 트레이닝(PT) 10회권을 선물했다. 윤씨는 “카네이션과 아버지 선물로 30만원 정도 쓸 계획이었는데, 어머니가 ‘꽃 대신 아버지 운동 비용을 내주면 어떻겠니’라고 먼저 제안하셨다”며 “원하지 않는 꽃을 선물할 바엔 건강을 챙겨드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경진 기자
이처럼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 꽃 대신 다른 선물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유통정보에 따르면 2022년 5월 1일부터 같은 달 8일까지 양재 화훼센터 카네이션 거래량은 6만 6153단(약 4억 288만원)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올해 같은 기간은 3만 4176단(약 2억 7249만원)으로, 거래량이 절반가량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서울 양재꽃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모두 울상을 지었다. 33년째 꽃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이연임(75)씨는 “3월에서 5월 사이 봄에 꽃을 가장 많이 팔아야 하는데, 요새는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손님이 많이 없다”며 “어버이날인데도 카네이션을 딱 한 송이 팔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 성모(70)씨는 “올해 카네이션 품질이 좋아 많이 준비했는데 손님이 오질 않는다”며 “꽃 가격을 원가 수준까지 낮춰도 도통 팔리질 않아 장사를 접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와중에 늘어나는 카네이션 수입량도 화훼농가의 근심을 더하고 있다. 국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보면 2022년부터 지난해 사이 중국산 카네이션은 수입량이 432.7t에서 613.6t으로, 콜롬비아산은 1277.2t에서 1636.6t까지 늘었다. 경상남도농업기술원 화훼연구소 관계자는 “중국이나 콜롬비아는 카네이션을 재배할 때 별다른 시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좋은 기상 조건을 갖췄기에 품질이 좋고, 상대적으로 인건비도 적게 들어 가격이 싼 편”이라며 “생산 단가가 높은 국산 카네이션보다 싸게 대량으로 재배해 들여오니 국내 농가가 가격으로 수입산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김경진 기자
화훼농가는 스스로 꽃 생산량을 줄이거나 재배 품목을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려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나 복지단체 등에서도 각종 행사를 통해 카네이션 소비를 촉진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게 농가 측 반응이다. 용인에서 농원을 운영하는 최일규(70)씨는 “3년 전부터 매해 기르는 꽃의 양을 줄이고 있는데도 판매량 또한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자체 등에서 소비 촉진 행사 등을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큰 도움까지는 되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천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불경기 및 고물가 등의 요인으로 꽃보다 실용적인 선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라며 “그런 와중에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은 수입산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다 보니 국내 농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효범 서울대 원예학과 교수는 “화훼 산업도 농산업의 한 축인데 꽃이 농업 생산물이라는 인식은 많지 않다”며 “한국은 꽃 소비가 외국에 비해 활발하지 않고 인건비 등 단가도 높은 만큼 대형 농가를 육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싸고 좋은 품종을 전문성을 갖춘 기관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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