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 은퇴를 선언한 '세계 투자계의 현인' 워런 버핏(94)이 밝힌 은퇴 결심 이유다.

그는 14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은퇴 결심 시기에 대해 "마법 같은 순간은 없었다"며 "고령 체감"을 배경으로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닌,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고 느껴 자리를 내려놓는다는 의미다.

버핏은 60년간 맡아 온 미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지난 3일 깜짝 발표했다. 이후 그가 직접 은퇴 이유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워런 버핏 버크셔 CEO 겸 회장은 은퇴 이유에 대해 "이제 늙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AP=연합뉴스

WSJ은 버핏이 체감했다는 고령과 관련 "그는 가끔 걷다가 균형을 잃거나,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어느 순간 신문의 글자가 흐릿하게 보였다"고 전했다.

앞서 버핏은 버크셔 CEO직을 이어받을 후계자로 그레그 에이블(62) 버크셔 비보험 부문 부회장을 지목했다. 에이블은 내년 1월 1일부로 CEO에 취임한다.

버핏은 자신과 자신보다 서른 살 넘게 어린 에이블 사이에 "에너지 수준에 차이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하루 10시간 동안 에이블이 해낼 수 있는 일과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의 양 차이가 점점 더 극명해졌다"며 "그는 (나보다) 일을 모든 면에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 그를 그 자리(CEO)에 앉히지 않는 건 불공평한 일이었다"고 에이블을 높이 평가했다.

버핏의 뒤를 이어 내년 1월 버크셔 CEO로 취임하는 그레그 에이블. 로이터=연합뉴스

그간 월가에선 버핏이 평생 버크셔의 CEO로 남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작 버핏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CEO로서 내가 다른 누구보다 더 쓸모가 있다고 생각되는 한 CEO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 기간이 이렇게 길어진 건 나도 놀랍다"고 말했다.

그러나 버핏은 은퇴 후에도 계속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사무실(버크셔 본사)에 출근해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버핏은 버크셔 이사회 회장직은 유지할 예정이다. 그는 "내 건강은 괜찮고 은퇴를 하더라도 집에 앉아서 드라마나 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버핏이 지난해 5월 버크셔 주주총회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또 버핏은 투자자로서의 자신의 능력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0년 전이나 40년 전, 60년 전에 내가 했던 결정을 지금도 문제없이 내릴 수 있다"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어 "시장에 공황이 발생할 경우 가격이 하락하거나 모두 겁을 먹겠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면서 "그런 면에서 나는 여전히 유용한 존재다. 그건(투자 재능) 나이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버핏은 1965년 당시 섬유 회사였던 버크셔를 인수하고, 에너지·은행·항공·식품 등 실물경제 관련 기업에 집중 투자하면서 억만장자가 됐다. 그는 저평가된 우량 기업의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가치 투자'의 대가로 불린다.

15일 포브스 집계 기준 자산 1566억 달러(약 218조5000억원)를 보유한 그는 세계 5위 부호다. 그러나 그는 67년 전에 산 오마하의 주택에서 현재도 거주하는 등 소박한 생활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