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미국 ‘신용 쇼크’…미 국채가 의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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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안전자산의 굴욕

미국 국채의 ‘안전자산 왕좌’가 위태롭다. 최근 3대 신용평가사 중 유일했던 무디스의 최고 신용 등급(AAA)을 잃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 이후 중국은 미국 국채를 팔고, 채권 투자자도 ‘위험 보상’ 요구가 커지면서 국채 금리가 더 오를(국채 가격은 하락)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글로벌 채권 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16일(현지시간) 연 4.484%로 이달 초(연 4.221%)보다 0.263%포인트 뛰었다. 이달 14일엔 석 달여 만에 4.5% 선을 뚫고 연 4.538%까지 상승했다.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는 건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16일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낮춘 영향이 크다. 미국 정부는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2023년 피치에 이어 3번째로 최고 등급(AAA)이 박탈됐다. 불어난 재정 적자에도 행정부와 의회의 정책 실패로 빚이 줄어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현재 미국의 재정적자는 연간 약 2조 달러(약 2801조원)로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었다. 무디스는 이 비율이 2035년엔 거의 9%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부채 규모가 커질수록 이자 비용도 불어난다. 정부가 빚을 갚기 위해 추가로 국채를 발행(채권 공급)할 경우 금리는 더 뛰어 이자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시장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대 아킬레스건(약점)으로 미국 국채를 꼽는 이유다.

미국 투자자문사인 브랜디와인 글로벌의 트레이시 첸 매니저는 “이번 강등은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에 대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게 될 신호”라며 “미국 국채와 달러의 안전자산 역할이 불확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들썩이는 물가도 국채 금리 상승세를 부추긴다.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추기 때문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올해 금리 인하 횟수 전망치는 지난달 4회에서 이달 2회 이상으로 줄었다.

세계 2위 미국 국채 보유국인 중국이 3위로 밀려났다는 점도 변수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 투자자가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는 올 3월 말 기준 7654억 달러(1072조원)로 한 달 사이 189억 달러 줄었다. 보유액 순위로는 일본(1조1308억 달러)과 영국(7793억 달러)에 이어 3위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 달러 자산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점진적으로 미국 국채 비중을 줄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5년 전(1조690억 달러)과 비교하면 그 사이 중국은 3036억 달러어치 미국 국채를 판 셈이다. 중국이 손에 쥔 미국 국채가 역으로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이 대규모로 미국 국채를 매각하면 국채 가격은 폭락할 수 있어서다. 다만 이번 통계는 올 3월 말 기준으로 미국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지난달 이후 상황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재정 적자 증가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점차 미국 정부가 빚 무게에 짓눌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여기에 글로벌 채권 투자자의 위험 보상 요구가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미국 국채 금리는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골드만삭스도 올해 말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예상치를 기존 4%에서 4.5%로 상향 조정했다.

원화값도 현기증…이달 들어 하루 평균 25원 출렁

국채뿐 아니라 외환시장도 파고가 높아졌다. 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6일까지 달러당 원화가치 변동 폭은 하루 평균 25.26원(야간 거래 포함)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 원·달러 거래가 가능한 시간이 오전 2시까지로 연장된 이후 가장 큰 변동 폭이다. 장 중 최고점과 최저점의 차이는 지난 4월 미국의 ‘관세 폭탄’ 여파로 하루 평균 15원 가까이로 벌어졌는데, 5월 들어 그 폭이 더 커졌다.

외환시장이 크게 출렁이는 건 미국과 주요 무역국 사이 벌어지고 있는 관세 협상 때문이다. 미국이 달러 약세를 유도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 내 제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스티븐 미란 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보고서를 통해 “제2의 플라자 합의 같은 ‘마러라고(Mar-a-Lago Accord)’ 합의를 추진할 수 있다”고 밝히며, 인위적인 달러 약세 조치 가능성에 불을 지폈다.

한·미 관세 협의 과정에 ‘원화 절상’이 협상 카드로 쓰일 거란 전망도 나온다. 다음 달 발행되는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가 가늠자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미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이 당장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관세 협상의 영향으로 달러 약세가 심해지면 원화값은 단기간 1350원까지 오를 수 있다(환율은 하락)”고 전망했다.

다만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플라자 합의 같은 걸 하려면 유럽과 중국이 협조해야 한다”며 “유럽과의 협상은 진척이 더디고, 중국도 환율 논의는 부수적으로 보기 때문에 현재로선 그런 합의를 우선순위에 두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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