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학생입니다" 대신 "잔업해요" 배운다, 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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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혜진 서정대 특수목적한국어연구소장은 이주노동자 맞춤형 한국어 교재『장영실 기초 한국어』발간을 주도했다. 이영근 기자

“반장님, 오늘은 무슨 일을 해요?”

서정대 특수목적한국어연구소가 16일 발간한 『장영실 기초 한국어』에는 ‘반장님’이라는 호칭이 등장한다. 제조업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와 취업을 희망하는 유학생을 위해 만든 맞춤형 교재이기 때문이다. 서정대는 국내 전문대 중 외국인 유학생 수(4873명)가 가장 많은 곳이다. 교재 집필을 주도한 손혜진 서정대 특수목적한국어연구소장은 “기존 한국어 교재는 이주민이 마주하는 현장과 괴리된 내용이 많아 학습 동기 저하 등 한계가 뚜렷했다”고 말했다.

75페이지 분량의 얇은 교재는 이주노동자가 제조업 현장에서 자주 접하는 의사소통 상황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 작업장에 목장갑이 있어요?" “B구역에서 잔업해요” 등 직무 상황과 연결되거나 “월급날이 언제예요?” “오늘 공장 회식 있으니까 참석하세요” 등 일상 생활에서 나눌 법한 예문이 실렸다. 단어도 ‘안전모’ ‘조립하다’ ‘출퇴근’ ‘가연성 물질’ 같은 현장 밀착형이 대부분이다. 서정대에 재학 중인 호 응억 또안(19·베트남)은 “졸업 후 한국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데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한국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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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기초 한국어』는 이주민이 제조업 현장에서 자주 맞닥뜨릴 법한 상황을 중심으로 내용이 구성됐다. 이영근 기자

교재는 의사소통 문제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주노동자가 많다는 현실에서 탄생했다. 기껏 기술을 배워놓고 적응에 실패해 한국을 떠나는 유학생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서정대는 지난해 6월부터 제조업 현장에서 두루 통할 교재 작업에 착수했다. 손 소장은 “원활한 의사소통은 이주노동자 생산성뿐 아니라 안전 문제와도 직결된다”며 “이주민 입장에서도 학습 효능감을 느껴야 통합과 적응이 빠르다”고 강조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의 의뢰로 2023년 9월 발간한 『용접 한국어』 제작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당시 서정대 연구진은 전남 영암군 조선소를 찾아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직원 인터뷰를 통해 실제 사용되는 용접 용어를 반영한 ‘조선소 훈민정음’을 집필했다. 삼호중공업 관계자와 외국인 학생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대기업처럼 교육 체계를 갖추기 어렵지만 한국어 교육 수요가 있는 중소기업에 이번 교재가 도움될 것이라는 게 연구진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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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4월 25일 경기도 양주시 서정대에서 열린 외국인 유학생 요양보호사 양성 간담회에 앞서 시설 점검을 하고 있다. 뉴스1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국내에 장기체류 외국인은 208만4412명. 이 중 취업자격 체류 외국인은 60만4474명으로 28.9% 수준이다. 이창원 이민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비전문취업(E-9) 비자를 통해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2~3년이 지나도 한국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E-9 이주노동자도 주말을 이용해 대학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이런 교재가 더 많이 제작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서정대는 조만간 요양·간병·육아 분야 이주노동자가 학습할『돌봄 한국어』도 내놓을 예정이다. 손 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술자 장영실처럼 교재를 학습한 이주노동자와 유학생이 한국 구성원으로 잘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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