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전철 오면 병 따요"…日여성 '알코올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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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집 밖에 전철이 지나갈 때만 소주 병을 열었어요. 남편이 병을 따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거든요."

일본 시코쿠 다카마쓰의 산코병원에선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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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10월 1일 일본 도쿄 시부야의 번화가를 걷고 있는 사람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AP=연합뉴스

특이한 점은 이 모임은 여성만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곳에 모이는 여성들은 술 대신 녹차를 마시면서 알코올 중독자로서 겪었던 에피소드나 술을 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저마다 경험담을 공유하며 매주 웃음 꽃을 피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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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코쿠 다카마쓰에 있는 산코병원의 알코올 중독 치료 프로그램 안내 페이지. 사진 산코병원 홈페이지 캡처

고위험 여성 음주율 해마다 증가 

일본 후생노동성이 실시하는 '국민건강 및 영양조사'에 따르면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고위험' 여성 음주율(알코올량으로 따져 하루 20g 이상)은 2010년 7.5%에서 2019년 9.1%, 2023년 9.5%로 꾸준히 증가세다. 남성(하루 40g 이상)은 2010년 15.3%, 2019년 14.9%, 2023년 14.1%로 감소세인 것과 대조적이다.

우미노 슌 산코병원 원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면서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등의 스트레스가 증가해 여성 알코올 중독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 통신에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성을 타깃으로 한 주류 광고가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라고 짚었다. 그는 또 "섭식장애, 우울증, 성폭력 또는 학대 경험 같은 트라우마를 겪은 여성은 더 알코올 중독이 되기 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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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9일 도쿄 중심부의 한 거리에 있는 편의점 내부에서 한 여성 고객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AFP=연합뉴스

"여자가 술을 마신다고?"

하지만 일본에는 여성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치료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음주 문화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탓이다. 모임 주최자이자 약사인 시노 우스이(48)는 "나도 알코올 중독으로 매일 술에 취해 살았지만, 여성으로서 알코올 중독이 됐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통신에 말했다. 그는 4년 전 모임을 통해 치료를 시작해 겨우 금주에 성공했다고 한다.

모임에 참여한 대부분의 여성들 역시 시노처럼 치료는커녕 가족이나 친구에게 숨기기 급급했다고 털어놨다. 20대 때부터 맥주에 중독돼 있었다는 한 40대 여성도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란 사실을 부인한 채 17년 간 알코올 중독자로 살았다. 이 여성은 "알코올 중독은 남성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 인정하기 두려웠다"고 통신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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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3월 24일 일본 도쿄의 이자카야(선술집) 앞을 한 여성이 걷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로이터=연합뉴스

"음주=남성 문화? 인식 변화 및 대안 마련 시급"

전문가들은 오히려 여성이 남성보다 알코올 중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고다 노부히토 와세다대학 이공학술원 교수는 2015년 연구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낮고 호르몬의 영향도 있어 술에 더 잘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또 여성도 알코올 중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높이는 동시에 여성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시노는 "중독은 혼자서 극복할 수 없다"며 "여성 알코올 중독자들이 부끄러움 없이 서로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들이 다시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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