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北 '통미봉남'에 유화책 안 돼…지금은 연합훈련 강화할 때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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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4~5일 남북 접경지역에서 대북확성기 철거했다. 국방부는 남북 간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라며 설명했다. 국방부

지난 7월 28일, 김여정이 발표한 담화는 또 한 번 ‘통미봉남’을 노골화했다. 이재명 정부와 대화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만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단,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를 의제로 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에서다. “다른 접촉 출로를 모색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란 언급은 기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했다. 미국의 국무부, 국방부, 또는 재무부 등의 관여를 건너뛰고, 의제 선정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대화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통미봉남을 통해 한·미 양측에 양보 요구

북한이 응하지 않는데도 미국이 계속 대화를 요청해왔던 것으로 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강하게 압박해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의지는 크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기대와 달리, 북핵 위협의 점진적 감소와 비핵화로의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는 협상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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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지난해 여름 수해를 겪은 신의주에 세워질 위화도온실종합농장 건설 현장과 의주군 섬지구 영구화제방 공사 현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연합

따라서 김정은은 한국의 대북정책과 이에 대한 대미 조율이 이루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입장을 관철해 최대한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첫 단추를 끼우려는 의도를 가진 것 같다. 북한이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에게, ‘북한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려는 정책은 일찌감치 재검토하라’고 친절히 얘기해준 것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정은이 김여정의 입을 빌려 유도하려는 방향은 그 반대일 것이다. 한국이 연합 연습·훈련 중단과 같은 북한의 요구를 더 신속하게 더 과감하게 수용하고, 미국은 이 같은 한국의 대북 관여 의지에 호응하면서 비핵화를 추구하지 않는 협상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2018년과는 다른 한·미 연합 연습·훈련 조정의 맥락  

현재로서는 북한이 한국과 대화할 의지가 없는 것을 재차 확인했기 때문에, 한국이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이를 미·북 협상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이익까지 고려해 협상에 임할 가능성은 작지만, 우리가 북한에 원하는 요구와 그에 대한 대가로 제시할 수 있는 양보를 잘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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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해병대 장병들이 연합 상륙훈련에서 해상돌격 후 하차전투를 하며 후속상륙을 위한 경계를 실시하고 있다. 해병대

그런데 북한에 상응하는 요구도 없이, 미국 정부와의 사전 조율도 없이, 김여정이 한·미 연합 연습·훈련을 불편하게 여긴다는 말을 내뱉자마자 이를 먼저 조정해보려는 우리 정부의 움직임은 매우 우려스럽다. 연습·훈련의 조정은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으로 한차례 이뤄졌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호응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여건은 2018년과 다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조정을 제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또한 한·미 연합 연습·훈련은 2022년 한·미 합참의장 간 합의가 이뤄진 이래 급격히 확대·발전해왔고, 그로부터 양국 군이 함께 축적한 노력이 이제 막 결실을 보기 시작한 상황이다.

2023년 횟수를 기준으로, 과거 대비 연합연습은 약 2.4배(300여회), 야외기동훈련은 약 1.3배(1,100여회) 증가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후인 2025년 3월 진행된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FS) 시에도, 연합 야외기동훈련이 전년 10건 대비 16건으로 늘어났다. 지난 4월,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군사령관은 본인의 임기 동안 새로운 작계에 따라 한·미 연합 연습·훈련을 강화해나가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미국 정부에 조정을 요청하게 되면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 국방부와 주한 미군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응한다 해도, 보름 뒤 있을 연합 연습·훈련을 준비하던 인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연습·훈련을 정치적 필요에 따라 갑자기 조정하겠다는 것은, 한국 정부가 이것을 안 해도 되는 일처럼 여기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한·미 동맹 현대화가 다가올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부상한 만큼, 한미 연합 연습·훈련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지는 오히려 비장하리만치 강력해야 할 때이다. 동맹 현대화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인도-태평양으로 확장하고, 한국군의 한반도 방위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에 따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훈련을 조정하겠다는 것은 우리가 주한미군의 대중 견제 역할 확대를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관여의 논리와 힘의 논리 간의 조화를

김여정의 담화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의 의제가 한미 간의 상호 합의 하에 잘 조율된다면, 한국에도 유익한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여를 위해 국방에 대한 양보가 이뤄져야 한다면, 반드시 북한으로부터도 이에 상응하는 국방에서의 양보를 담보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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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EPA=연합

한국이 먼저 양보하면 북한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 낙관적이며, 그런 기대를 바라보는 주한 미군은 ‘그럼 우리가 차라리 나가줄까’라고 할지도 모른다. 북한의 인식을 변화시키기는커녕 미국 국방부와 주한 미군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결정이라면, 반드시 재고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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