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어멍, 폭싹 속았수다"…18세부터 물질, 95세 해녀 은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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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물질한 어멍 고생에 눈물반 웃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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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한수풀해녀학교에서 진행된 '해녀삼춘, 폭싹 속았수다' 해녀은퇴식에서 은퇴식 최고령 해녀 고명효(95) 할머니와 딸 홍길선(60)씨가 바다를 배경으로 웃고 있다. 최충일 기자

“물(물결이)이 창창창창할 때(세고 높을 때) 거꾸로 가면(거슬러 헤엄치면) 귀가 팡 터져요(귀먹어요)” 95세 해녀 어멍(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딸 홍길선(60·제주시)씨의 눈에 물이 맺힌다. 1931년 3월생인 고명효 할머니는 18살때부터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를 중심으로 물질을 했다. 80세가 조금 넘은 시점까지 바닷속에서 소라를 땄으니 적어도 62년을 바다에서 일한 셈이다.

“9남매 위한 어머니 고생...이제야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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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한수풀해녀학교에서 진행된 '해녀삼춘, 폭싹 속았수다' 해녀은퇴식에 상영된 오지윤 학생회장이 제작한 헌정영상. 최충일 기자

물질을 하며 고막에 무리가 갔고, 지금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딸 홍씨는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어머니 왜 그렇게 살아’ 하며 밭일하시다 또 물질하고 고생만 하시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며 “지금에 와서야 우리 9남매 이렇게 잘 키워주시느라, 자식 아니면 그렇게 살지 않으셨을 걸 겨우 알게 됐다. ”고 울먹였다.

‘해녀삼춘, 폭싹 속았수다’ 은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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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한수풀해녀학교에서 진행된 '해녀삼춘, 폭싹 속았수다' 해녀은퇴식. 최충일 기자

90대 노모와 60대 딸의 이야기가 전해진 건 제주시 한림읍 귀덕 2리 어촌계가 지난달 26일 연 ‘해녀은퇴식’ 때였다. 은퇴식 이름은 최근 큰 인기를 얻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따온 ‘해녀삼춘, 폭싹 속았수다’였다. 딸 홍씨도 이 드라마의 팬이었다. 홍씨는 “나도 애순이(주인공)처럼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해녀 일이 미웠다.”며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보며 예전의 내가 투영돼 너무 많이 울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어느 때보다 박수 컸던 ‘한수풀해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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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한수풀해녀학교에서 진행된 '해녀삼춘, 폭싹 속았수다' 해녀은퇴식. 최충일 기자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귀덕 2리의 한수풀해녀학교에는 사람들이 모여 북적였다. 지역에서 활동하다 은퇴시점을 맞은 10명의 베테랑 해녀들과 그 가족들, 해녀학교 학생과 관계자 등 100여 명이었다. 이날 은퇴식을 한 해녀는 95세 최고령 고명효 할머니 외에 김심영(88), 양정자(83), 이명자(79), 장금자(88), 홍부자(83), 이성화(95), 고순화(88), 조정자(91) 할머니 등이다. 양화자(90) 할머니는 요양원에 입원해 불참했다. 모두 경력 60~80여 년의 귀덕2리 어촌계 출신 해녀들이다.

감사패엔 ‘늘 바다를 지켜주신 우리 해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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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한수풀해녀학교에서 진행된 '해녀삼춘, 폭싹 속았수다' 해녀은퇴식의 감사패. 최충일 기자

은퇴식에 참석한 가족과 이웃, 한수풀해녀학교 학생, 현직 해녀들은 은퇴 해녀들을 향해 “해녀 삼춘(어르신)들 복삭 속앗수다(폭싹 속았수다의 원어)”며 큰 박수를 보냈다. 이날 마을이 준비한 감사패엔 ‘바람 거센 날에도, 파도 높은 날에도 늘 바다를 지켜주신 우리 해녀님’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가족 먹이고, 마을 살피고, 제주 지켜온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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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한수풀해녀학교에서 진행된 '해녀삼춘, 폭싹 속았수다' 해녀은퇴식에서 김성근 한수풀해녀학교장(어촌계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김성근 한수풀해녀학교장(어촌계장)은 “찬 바닷속에 몸을 던져 가족을 먹이고, 마을을 살피고, 제주를 지켜온 분들의 은퇴를 함께 축하해 영광”이라며 “이제는 두 손 내려놓고, 두 발 편하게 뻗고 건강한 당신의 시간을 누리길 바란다.”고 축사를 했다. 은퇴식을 함께하는 (사)제주해녀문화협회(이사장 양종훈)는 지난해 5월 첫 해녀 은퇴식을 시작으로 올해 2월 제주시 도두동, 5월 김녕 해녀 은퇴식 등을 주관하며 이어오고 있다.

“앞으론 자신 위한 삶 온전히 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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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한수풀해녀학교에서 진행된 '해녀삼춘, 폭싹 속았수다' 해녀은퇴식. 최충일 기자

은퇴식 장소가 새내기 해녀를 모으고 교육하는 ‘한수풀해녀학교’인 만큼 학생들의 축하도 이어졌다. 해녀학교 교육과 은퇴식 참석을 위해 전날 제주행 비행기를 탄 김문주(26·서울)씨는 “해녀 선배님들이 오랜 물질생활을 마무리하시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시는 자리에 함께해 가슴이 뭉클하다”며 “존경하는 선배님들이 앞으로는 자신을 위한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고 했다.

2008년부터 900여 명 졸업생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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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17일 한수풀해녀학교의 바다 교육에 참가한 학생들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최충일 기자

올해 한수풀 해녀학교엔 48명이 입학했다. 66명이 지원해 48명이 최종 선발됐다. 오는 8월 말까지 안전교육, 물질실습, 해녀문화 이해 등 실질적인 현장 중심의 해녀 교육을 하고 있다. 2008년 제1기 졸업생 배출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제17기 입문양성반을 운영했다. 2017년부턴 직업양성반을 신설해 지난해 제8기 졸업생까지 총 9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속해서 감소하는 제주해녀인구를 다시 복원하는 게 목표다.

3000명 붕괴한 제주해녀...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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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17일 한수풀해녀학교의 바다 교육에 참가한 학생들이 물질 교육을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해녀 숫자는 2024년 기준 2623명이다. 2023년에 2839명으로 3000명대가 붕괴했다. 1970년에 1만 4143명에서 지속해서 급감했다. 한편 제주해녀는 2015년 제1호 국가중요어업유산을 시작으로,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2017년 문화재청 국가무형문화재, 2023년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에 등재됐다. 2024년 전국 1만명 해녀 권익을 위한 전국해녀협회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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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한수풀해녀학교에서 진행된 '해녀삼춘, 폭싹 속았수다' 해녀은퇴식의 축하공연. 최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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