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방향성 좋지만 고난도 과제"…'산재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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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모든 산재 사망 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直報)하라.”
9일 휴가에서 복귀한 이재명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처음으로 내린 지시 사항이다. 이 대통령은 고용노동부를 향해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 산재 사고 방지를 위한 사전·사후 조치 내용 등을 보고하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산재 사망 사고 근절을 강하게 주문하는데도 지난 8일 경기 의정부 DL건설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지는 등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자, 이 대통령이 직접 ‘산재와의 전쟁’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 대통령의 직보 지시는 산재 사망 사고를 실시간으로 직접 챙기겠다는 의미다. 그간 대통령실에선 국정상황실을 중심으로 매일 아침 일일보고 형태로 전날 발생한 산재 사고 내용을 보고하거나, 특히 중요한 산재 사고는 규모·원인 등을 담아 통상 5~6시간 내 긴급 보고를 올렸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산업재해 보고를 상시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반복적 산재 사망 사고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공공입찰 참가 자격 제한 ▶건설업 면허 취소 같은 각종 제재를 거론하며 산재 사망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기업에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곧바로 ‘산재 직보’ 지시를 내린 데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가의 제1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인 만큼, 산업 현장에 안전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획기적으로 산재 사망 사고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싱가포르는 실질적 책임자에 대한 처벌 더하기 실질적인 제재, 예를 들자면 벌점을 많이 받았을 땐 이주노동자 취업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안전한 나라가 되고 있다”며 “(이를) 적극 참조해서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재명 정부가 한편에선 기업 중심 성장에 무게를 싣고 경제형벌 합리화에 나서면서, 산재와 관련해서 규제와 처벌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 엇박자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영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중인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산재 발생을 원하겠느냐”라며 “기업들 입장에선 산재 예방을 위한 투자나 체계적인 제도 개선도 함께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상황에서 산재 사망 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을 경우에 대한 부담감도 적지 않다. 여권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산재 사망률 상위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방향성은 너무나 타당하지만, 실제 이를 줄일 수 있느냐는 건 또 다른 문제”라며 “당·정이 합심해서 풀어야 하는 고난도 과제”라고 말했다.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사장이 지난달 29일 인천 송도 본사에서 연이은 현장 사망사고와 관련한 담화문 발표에 앞서 관계자들과 사과 인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올해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 연이은 산업재해 사고로 노동자들이 숨진 사실을 언급하며 질타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단순한 경고를 넘어, 산업 안전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경종을 울리는 것으로 산재가 일부 줄긴 하겠지만, 그 이상을 정책으로 줄여내는 게 정부의 실력”이라며 “독일과 일본처럼 노사가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업종·직종의 특성에 특화한 자체 규범을 만들고, 전문성을 갖춘 고용 당국이 이를 승인하는 식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 당국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처벌과 예방의 두 가지 수단을 동시에 쓴 싱가포르 사례도 여권에선 참고 모델로 거론된다. 싱가포르는 ‘WSH2015 (Workplace Safety & Health·산업안전보건 2015)’와 ‘WSH2028’ 등 10년짜리 장기 구조 개혁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2005년 10만 명당 4.9명이던 산재 사망률을 2024년 1.2명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정부가 재원을 투입해 일정 규모 이상 건설 현장에 영상감시시스템(Video Surveillance System)을 도입한 것도 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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