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젤렌스키, 휴전 커녕 땅 뺏길 판…결국 '안보보장'과 맞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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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는 18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발걸음이 한결 무거워졌다. 백악관에서 6개월 만에 재회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란 압박을 할 가능성이 커서다. 당초 기대한 즉각 휴전이 아닌 영토 포기 요구에 직면한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당혹감 속에 18일 회담에서 트럼프가 제안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보장 방안을 구체화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 알래스카 회담에서 의견을 모은 핵심 합의 내용은 세 가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휴전 없이 곧바로 평화협정 체결에 나선다.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는 동부 돈바스(루한스크·도네츠크) 지역을 러시아에 양보한다. ▶대신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에 나선다.

휴전은커녕 푸틴 영토 공세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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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엘멘도프-리처드슨 합동군사기지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는 이 같은 내용을 18일 회담에서 젤렌스키에게 전달할 예정인데,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매우 큰 강대국이고 그들(우크라이나)은 그렇지 않다”고 밝히며, 사실상 젤렌스키에게 자신과 푸틴의 협의 내용을 수용하라고 압박할 것을 예고했다.

젤렌스키로선 곤혹스럽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병력난 등에 시달리며 전선에서 러시아에 밀리고 있다. 이에 트럼프가 지난 5월 자신과 합의한 ‘조건 없는 30일간 즉각 휴전’을 푸틴에게 관철할 거로 기대했는데 이를 건너뛰고 평화협정 논의에 합의했다. 트럼프가 제재 등을 통해 푸틴을 압박하기는커녕 평화 협정 논의를 명분으로 러시아의 영토 확보 공세를 용인한 셈이다. “트럼프가 푸틴에게 전쟁을 계속할 시간을 벌어줬다”(뉴욕타임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젤렌스키는 회담 직후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가 모든 휴전 제안을 거부하며 살상을 언제 멈출지에 대해 결정하지 않으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며 평화 협정 추진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돈바스 포기는 곧 키이우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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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 전쟁연구소(ISWW)]

영토를 러시아에 내놓으라는 요구는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푸틴은 트럼프에 우크라이나가 돈바스에서 완전히 철수하면 헤르손, 자포리자 등에선 현재 전선 기준으로 공격을 멈추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를 타국에 넘기는 건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특히 교통의 요지인 도네츠크를 온전히 뺏길 경우 러시아에 직통 침공로를 내주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우크라이나 언론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돈바스 양보 등) 러시아의 터무니 없는 요구는 (수도) 키이우 포기 요구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요구안을 젤렌스키가 받아들일 경우 우크라이나 내에서 격렬한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서진(西進)을 우려하는 유럽 역시 영토 양보는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표명해왔다.

믿을 건 트럼프뿐…골프 친구 동원 가능성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의지할 카드는 트럼프밖에 없다. 만족스럽지 못한 조건이지만, 우크라이나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꿈쩍하지 않던 푸틴을 협상장으로 끌어낸 게 트럼프이기 때문이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찰스 리치필드 부국장은 “푸틴과 가장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트럼프”라며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트럼프를 통해 협력해야 할 운명”이라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조지 비비 퀸시연구소 연구원은 “우크라이나는 소모전에서 러시아보다 오래 버틸 수 없다”며 “이런 현실 때문에 트럼프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와 유럽으로선 트럼프와의 전면 충돌은 피하면서도 우크라이나의 실리를 가져가야 하는 난처한 처지에 놓인 셈이다. 특히 젤렌스키는 지난 2월 면박을 당하고 쫓겨나다시피 한 백악관 노딜 회담의 악몽만은 피해야 한다.

이에 젤렌스키가 18일 회담에서 일단 영토 문제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내비쳤고, 최소 1명 이상의 다른 유럽 정상이 회담에 동참할 전망이라고 FT가 전했다. 후보로는 트럼프의 ‘골프 친구’로 불리는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이나, 지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를 “아빠(Daddy)”로 칭하며 찬사를 보낸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꼽힌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안보보장 노리는 유럽…영토 포기 용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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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관건은 안보보장이다. 트럼프는 알래스카 회담 직후 우크라이나와 유럽에 유럽 주도의 안보군에 군사·재정 지원을 제공하는 등의 ‘안보 보증 패키지’ 검토 가능성을 밝혔다. 이에 유럽도 판이 깨지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모양새다. 로이터통신은 유럽 정상들이 트럼프와 나토 조약 5조와 유사한 집단 안보 체계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조약 5조는 나토 회원국에 대한 침략은 전체 회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고 공동 대응한다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에 가입은 못해도, 러시아가 재침공할 경우 안전 보장에 참여한 국가 전체가 함께 대응한다는 것이다.

대신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가 원하지 않는 영토 분할에도 호응하는 모양새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 등 국제 질서의 키를 쥔 강대국들에 의해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분할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18일 회담 이후에도 협상 과정에서 철저히 우크라이나가 배제된다면 80년 전 미국·영국·소련 등이 강대국 간 담판으로 약소국 국경선을 결정한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칼럼니스트 마이클 허시는 “휴전 과정에서 수십 년간의 영토 논의 교착으로 이어지면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상황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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