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균형외교" "대국관계 병행 발전"…中, 李-…
-
1회 연결
본문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 대사가 25일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잘 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같은날 중국 외교부는 방중 특사단을 맞이한 뒤 한국을 향해 "강대국 관계의 병행 발전"을 처음으로 꺼내 들었다. 한국 시간으로 26일 이른 새벽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외교부 본부와 공관, 관영 매체까지 동원해 한·미 동맹을 견제하기 위한 '24시간 총력전'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대사가 25일 오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중 관계 발전 전망'을 주제로 한·중 우호협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박현주 기자
다이 대사는 이날 오전 한·중 우호협회가 '한·중 관계 발전 전망'을 주제로 개최한 간담회에서 "한국이 대중 및 대미 관계를 '병행 발전'시키는 것이 한국의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친미는 곧 반중이고, 친중은 곧 반미라는 사고를 조장하는 건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크게 압축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균형 외교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을 두고 사실상 미·중 사이 등거리 외교를 주문한 거란 분석이 나온다. 다이 대사는 "미국은 일방적으로 중국의 발전을 무리하게 탄압·억제한다"며 "이는 궁극적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기상 이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이 미국의 대중 견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다이 대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려면 한국이 적절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도 말했다. 다이 대사는 "한국 각계가 시 주석의 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이에 중국은 (시 주석의 방한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PEC 정상회의까지 두 달밖에 안 남았으니 양측은 이를 위해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풍성한 성과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맥락상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 있는 태도를 취하는 걸 마치 시 주석의 방한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내거는 것처럼 들릴 여지가 있는 발언이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 주석의 APEC 정상회의 참석은 내년 중국이 APEC 개최국이고 미·중 정상회담 가능성도 크다는 점에서 이미 내부적으로 결정된 사안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은 이를 마치 한국에 주는 특혜이자 자신들이 외교적으로 협상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박병석 전 국회의장(왼쪽 네 번째)을 단장으로 하는 대통령 특사단이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오른쪽 네번째)을 24일 베이징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베이징특파원 공동취재단.
다이 대사가 언급한 미·중 관계의 '병행 발전'은 이날 오전 7시 홈페이지에 게시된 중국 외교부의 보도자료에서 처음 등장했다. 중국 외교부는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이재명 대통령 특사단이 전날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면담·만찬을 했다면서 "특사단은 한국이 '중국 등 주요 강대국들과 관계를 병행 발전하고, 지역의 평화, 안정, 발전, 번영을 함께 수호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중국이 강대국 관계의 '병행 발전'이라는 말을 쓴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앞서 미국을 겨냥해 "한·중 관계는 '제3자'의 제약을 받아선 안 된다"(지난달 28일 한·중 외교장관 통화 관련 중국 외교부 자료)고 말한 것보다 한층 더 노골적으로 균형 외교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외교부는 또 "중·한은 국제 자유무역 체제를 수호하고 무역 보호주의에 공동으로 반대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며 관세 압박 등 '트럼피즘'에 공동 대응할 것도 주문했다.
대만 문제에 대한 '사전 압박'도 있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왕 부장은 "민감한 문제를 적절히 처리해 중·한 관계가 올바른 궤도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감한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란 건 대만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는 취지로 읽힌다. 문재인 정부 이후 한·미는 그간 정상회담 결과물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전 유지”를 강조한다는 내용을 담았고, 중국은 반발해 왔다.
다이 대사도 우원식 국회의장이 참석할 예정인 다음 달 3일 중국 전승절(항일전쟁 및 반 파시스트전쟁 승리 80주년 대회) 행사를 이날 거론하며 "대만의 중국 본토 귀속은 2차 대전 승리의 성과이자 국제질서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며 대만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고, 그 어떤 형식의 대만 독립에 단호히 반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원칙으로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게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 등이 다뤄질 경우 중국은 이를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므로 한국에 적절히 대응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며 “강대국 관계 병행 발전이라는 표현도 미·중을 동등하게 고려하라는 압박의 성격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특사단과의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베이징특파원 공동취재단.
중국은 관영 매체도 활용해 미국을 경계했다. 이날 새벽 공개된 중국 관영 환구시보 사설을 통해 “최근 몇 년간 중·한 관계가 수교 이후 최저점에 빠진 근본 원인은 외부 세력의 구조적 영향뿐 아니라 한국 대중 인식의 편차에 있다”고 보도했다. '외부 세력'은 미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환구시보는 "전략적으로 자주적인 한국만이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다"라고도 주장했다.
한국의 미·중 사이 균형 외교와 독자적 외교노선을 줄기차게 강조한 중국 측 입장은 이날 환구시보 보도(오전 1시경)로 시작해 중국 외교부 보도자료(오전 7시경), 다이 대사 발언(오전 11시경)까지 수 시간 간격으로 이어졌다. 주한 중국 대사관은 언론에 환구시보 보도를 한국어 번역본과 영자지 보도(글로벌타임스)로도 공유했다.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만남을 앞두고 그야말로 24시간 전방위 압박에 나선 셈이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특사단과 시 주석의 만남이 무산된 배경에는 같은 시기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불만과 함께 한국에 대한 길들이기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