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李전략 먹혔다…트럼프 "北김정은 만나라는 지도자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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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번 뇌리에 박힌 첫인상을 쉽게 지우지 않고 틀린 정보를 거침없이 내뱉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특유의 스타일은 25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도드라졌다.

트럼프는 전반부 약 50분 동안 생중계된 회담에서 “알래스카에서 한국과 합작 투자(joint venture)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국은 지난달 말 관세 협상에서 미국산 LNG 등에 대한 구매 의사만 밝혔을 뿐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줄곧 주한미군 규모(2만 8500명)를 4만 명이라고 부풀려 온 주장도 반복했다.

트럼프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통해 각인한 한국에 대한 인식도 재차 드러냈다. 그는 “시 주석이 말하길 한국은 지난 2000년 동안 중국과 51번 전쟁을 했다, 한국은 당시 남과 북이 아닌 하나였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도 시 주석을 인용해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고 말해 논란이 됐다. 한·일 과거사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나아가고 싶어하는데 한국이 그 문제에 매우 집착했다”며 1기 행정부 시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로부터 영향을 받은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이날도 “아베는 나의 좋은 친구이자 한국에 대해 매우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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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명록 작성 때 쓴 만년필을 선물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트럼프 특유의 스타일에 맞서지 않고 코드를 맞췄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보다 짙은 빨간 넥타이를 매고 회담에 임했다. 빨간색은 미국 공화당의 상징색이다. 내내 자세를 곧추세우고 두 손을 허벅지 위에 단정하게 올려놓은 채 대화하는 모습은 구부정한 자세의 트럼프와 대비를 이뤘다.

이 대통령은 회담 장소인 백악관 오벌오피스가 최근 트럼프 지시로 새로 단장한 것을 거론하며 “황금색으로 빛나는 게 정말 보기 좋다”는 칭찬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이어 다우 존스 지수 최고치 경신, 미 제조업 르네상스 등을 거론하며 트럼프를 추켜세웠다.

다소 경직된 표정이던 트럼프의 표정이 확 풀린 것은 이 대통령이 “김정은과도 만나시고, 북한에 트럼프 월드도 하나 지어서 거기서 저도 골프도 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한 대목부터였다. 이에 트럼프는 “이 대통령이 이를 도울 수 있다. 당신의 접근법이 (이전 한국 지도자들보다) 훨씬 낫다”며 웃음을 크게 머금었다. 트럼프는 비공개 회담에서 “김정은을 만나라고 한 지도자는 처음”이라고 고무된 반응도 보였다고 한다. 그간 미국 언론들이 “미국 대통령을 칭찬하는 것이 그를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8일 뉴욕타임스)이라며 강조해 온 ‘아첨 전략’이 먹혀드는 순간이었다.

트럼프가 회담 3시간 전 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는 글 등의 여파로 긴장감이 돌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반전시킨 건 사전 분석과 반복적인 예행연습이 있어 가능했다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회담 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를 찾아 “트럼프가 절 만나기 전 매우 위협적으로 SNS를 쓰셔 우리 참모들 사이에선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 저는 그러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쓴 ‘거래의 기술’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수석도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트럼프를 만난 다수의 분을 만나며 인간 트럼프를 철저하게 대비해왔다”고 설명했다. 또 이 대통령이 회담에서 “트럼프께서 피스 메이커(peace maker)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피스 메이커는 트럼프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표현”이라고 이 수석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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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한 금속 거북선. 사진 대통령실

트럼프에게 건넨 선물들도 그의 취향을 고려해 장기간 준비한 물건들이었다. 이 대통령은 백악관 방명록 서명식 때 사용한 펜에 트럼프가 “두께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며 관심을 보이자 즉석에서 선물했다. 국내 수제 펜 브랜드 제나일에 주문해 두 달여에 걸쳐 2개만 제작된 제품이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두꺼운 펜을 좋아하는 트럼프의 취향을 미리 알고 앞에서 꺼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외에도 외부 자문을 거쳐 맞춤 제작한 국산 수제 퍼터, 소형 금속 거북선 모형,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카우보이 모자도 트럼프에게 선물했다. 골프광인 트럼프의 체형에 맞춘 퍼터는 이 대통령 취임 직후인 6월 초에 의뢰해 제작됐다. 거북선을 만든 오정철 대한민국 기계조립 명장은 “7월 말 외교부의 의뢰를 받아 8월 초부터 밤낮없이 15일을 쏟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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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뒤 가진 업무 오찬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직접 써서 전달한 메시지를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메시지에서 이 대통령에게 "당신은 위대한 사람이고 위대한 지도자다. 한국은 당신과 함께 더 높은 곳에서 놀라운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난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다"라고 썼다. 연합뉴스

트럼프는 이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피습 사진이 실린 사진첩을 선물했다. 또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다. 한국은 당신과 함께 더 높은 곳에서 놀라운 미래를 갖게 될 것”이라고 쓴 자필 카드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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