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하루에 한권 팔리던 책인데…" 노벨상에 난리난 韓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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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출판사 안지미 대표. 본인 제공

9월 한 달간 국내 출간 6종 다 합해 40부 정도 팔렸는데, 하룻밤 새 1800부가 나갔다. (알라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후 12시간 만에 데뷔작 ‘사탄탱고’가 연간 판매량의 12배를 기록했다. (예스24)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 이 이름마저 낯선 헝가리 문호의 이름이 9일 밤 스웨덴 한림원에서 불리자 국내 서점가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수상자의 책은 『사탄탱고』『저항의 멜랑콜리』『서왕모의 강림』『라스트울프』『세계는 계속된다』『뱅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 총 6권. 교보문고는 일찌감치 온ㆍ오프라인에 구비된 책을 소진하고 예약 판매를 시작했으며 200여부의 일부 물량만 광화문 지점에 비치해뒀다. 알라딘 측은 "하룻밤 새 1800부라는 숫자는, 2022년 아니 에르노의 1000부, 2014년 가즈오 이시구로의 900부를 훨씬 웃도는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노벨문학상 라슬로 책 6종 출간한 알마출판사

이 역주행의 수혜는 오롯이 알마출판사 한 곳에 몰릴 예정이다. "하루에 한두 권 팔렸던 책들"(교보문고) 6종 모두 이 출판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데뷔작 '사탄탱고'는 1985년 출간됐지만, 영어판은 2012년에야 나왔을 정도다. 10일 오전 전화를 받은 알마출판사 안지미(55) 대표는 “그러잖아도 ‘도대체 왜 출간하냐’‘그래도 괜찮냐’는 걱정을 듣던 책 중 하나였는데, 우리는 망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노벨상 유망주로 언급되던 작가도 상을 탔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는 “수상 직후부터 밀려오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인쇄소를 여럿 알아보고 있다”며 분주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수상자의 대표작인『사탄탱고』는 하루 만에 7쇄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은 많은 독자가 온갖 짤막한 미디어에 자신을 소모하는 시대”라며 “그와 정반대되는 지점의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문학에 빠져서 끝도 없이 흐르는 만연체, 이야기 구조 속에서 미궁을 헤매는 데 시간과 마음을 온전히 쏟아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알마는 문학동네 자회사로 시작, 2013년 협동조합 출판사로 독립했다. 북디자이너로 알마의 아트 디렉팅을 총괄하던 그는 2015년 알마의 대표가 됐다. 다음은 안 대표와의 일문일답.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책을 번역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200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벨라 타르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를 봤다. 러닝 타임이 무려 438분, 그러니까 7시간 20분 정도 된다. 영화가 끝난 후 정성일 영화 평론가의 시네 토크까지 연달아 이어졌다. 온종일 한자리에 앉아 한 작품을 감상하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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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아트하우스 모모가 진행한 영화 사탄탱고의 특별 상영 포스터.

출판사 대표가 된 건 그로부터 한참 후(2015년)다.  
그만큼 잊을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어떤 예술 작품들은 감상하고 나면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고 할 정도로 감동과 희열이 느껴진다. 이런 귀한 기회를 딱 맞이하면 그 이후는 며칠, 몇 달이고 남들과 다른 속도와 감각으로 세상을 살게 된다. 대표가 되고 출간할 책을 찾으며 사탄탱고가 떠올랐다. 남들은 돈 안 되는 책을 낸다고 걱정하는데, 나는 오히려 ‘출판계가 그렇게 어렵다는데, 버티려면 좋아하는 것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출간을 추진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출판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이 이어졌다. 각 권 당 번역 기간만 1~2년씩 걸렸고, 번역가가 작업을 중도 포기한 적도 있었다. 안 대표는 “모든 번역가가 어려운 작품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지만, 그만큼 애정도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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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작가. 공식 홈페이지

번역이 어려웠다고 들었다.  
우리가 낸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책은 영어나 독일어로 한 번 번역된 걸 다시 번역한 중역본이다. 거기다 문장들이 워낙 길어 더 번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계는 계속된다』를 옮긴 박현주 번역가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만연체에 대해 “단편 소설 한 편에 마침표가 오직 하나인 작품도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번역가 선생님들의 노고가 컸다. 헝가리어 원문을 찾아보고, 연구하고, 직접 작가와 소통하기도 했다. 『서왕모의 강림』을 번역한 노승영 선생님은 번역 중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이메일로 작가와 직접 대화를 나눴다고 들었다. 참고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우리 출판사에서도 인터뷰를 해보려고 페이스북 메시지까지 보내봤는데, 답이 없었다. (웃음)  

알마출판사가 낸 6권의 번역본은 표지가 모두 비슷한 디자인으로 구성돼있다. 표지 상단부터 작품 제목, 작가 이름의 타이포그래피가 크게 새겨져 있고, 글 내용에 따라 기호나 패턴의 디테일만 조금씩 다르다. 북 디자이너 출신인 안 대표의 ‘큰 그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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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20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도서가 진열돼 있다. 책 표지 스타일이 비슷한 게 눈에 띈다. 뉴스1

표지만 봐선 6권의 책이 하나의 시리즈 같다.  
처음부터 이 작가의 책을 한 권만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은 분명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책을 한 권만 펴내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타이틀에서부터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표지부터 후속작을 유념에 두고 제작했다.  
띠지도 없다.  
필요 없는 건 만들지 않는 우리 출판사의 시그니처다. 그래도 이번 노벨상 수상을 기념해서는 띠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차기작도 곧 나오나.  
라슬로의 『헤르쉬트 07769』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1월 출간으로 예상한다. 우울과 불안에 휩싸여 사는 주인공 ‘플로리안’이 인류를 위협할 것 같은 과학적 발견을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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