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책실장·산업장관 동시 방미…교착된 관세 협상 돌파구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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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미 간 3500억달러(약 499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협상이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6일 함께 미국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을 만나 사실상 마지막 각료급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예상되는 만큼, 이번 방미는 실질적 타결 여부를 가를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대통령실과 산업통상부는 15일 언론 공지를 통해 “김용범 실장과 김정관 장관이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16일 미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한미 협상 테이블의 핵심 인물인 러트닉 장관과 만나, 투자 구조와 외환 안정 장치 등 핵심 쟁점을 놓고 집중 조율에 나선다.
이번 협상은 한국이 제시한 ‘수정 제안’에 미국이 일부 긍정적 반응을 보인 상황에서 열려 주목된다. 한국 측 협상 대표인 김정관 장관은 지난 9월 11일과 10월 4일 두 차례 뉴욕에서 러트닉 장관과 회담을 진행했으며, 당시 미국이 한국의 외환시장 불안 우려에 일정 부분 공감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지난 7월 타결된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예고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나 ‘투자 방식’과 ‘현금 부담 규모’를 두고 양측의 이견이 여전하다. 한국은 지분 투자 비중을 5% 수준으로 제한하고 대부분을 보증(credit guarantee)과 대출(loans) 형태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일본과 유사한 ‘백지수표식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윗줄 왼쪽은 이 대통령의 통역을 담당한 조영민 대통령실 행정관, 오른쪽은 트럼프 통역을 담당한 이연향 미(美) 국무부 통역국장. 김현동 기자
한국 정부는 ▲무제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합리적 수준의 직접투자 비중 ▲투자처 선정에 대한 관여권 보장 등을 핵심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투자 양해각서(MOU)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결렬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강경한 태도다.
다만, 미국이 한국에 단기간 ‘선불 투자’를 요구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지나친 위기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의 경우도 트럼프 행정부와 체결한 투자 MOU에서 개별 프로젝트별로 자금이 투입되는 구조였으며, 현금·대출·보증 등 다양한 형태의 자금 지원이 허용됐다. 일본 정부는 직접투자 비중이 1~2%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식 모델의 위험성에 주목하고 있다. 프로젝트별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현금 투자를 늘리라고 압박할 수 있고, 이 경우 ‘투자 백지수표’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투자 비율 상한을 정하는 ‘안전판’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협상에 김용범 정책실장이 동행한 것은 정부가 정상회담 전 구체적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시기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워싱턴DC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및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만나 관세 협상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한미 양측 모두 협상 타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은 관세 불확실성 장기화가 수출과 외환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미중 갈등 심화 속에서 공급망 안정과 조선·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서 한국의 협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협상은 단순한 통상 문제가 아니라 외교·안보적 이해관계와도 얽혀 있다. 한국이 오랫동안 추진해온 저농축 우라늄 활용 및 핵연료 재처리 허용 논의가 진전될 경우, 대미 투자 비용에 대한 국내 여론의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한 최근 중국의 희토류 등 전략 자원 무기화 움직임과 미국의 ‘MASGA(미국 조선업 재건)’ 정책 속에서 한국 기업이 주요 협력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협상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번 김용범·김정관 연합 방미가 교착된 협상을 풀 실마리를 제공할지, 아니면 양국 간 간극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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