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ELS, 판매 설계부터 잘못" 투자경험 따라 0~100% 차등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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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주가연계증권(ELS)에 가입했다면, 개별 판매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와 관련 없이, 일정 수준의 배상 비율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감독원이 은행의 ELS 판매가 설계부터 잘못됐다고 보고, 판매사 책임을 물어 일괄 기본 배상 비율을 적용하는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간 문제없이 판매됐던 ELS 상품 특성을 고려해, 투자자 책임도 물어 기본 배상 비율에서 가감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개별 사례에 따라 배상비율이 0~100%까지 다양해질 수 있다.

“판매사‧투자자 책임 종합 고려”

11일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내용의 ‘ELS 관련 잠정 검사결과 및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손실 배상비율은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도록 했다”면서 “ELS 투자 경험이 많거나 금융지식 수준이 높은 고객 등에 대한 판매는 배상비율이 차감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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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의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금감원이 특히 검사 대상 모든 은행과 일부 증권사에서 ▶무리한 실적경쟁 조장 ▶투자성향을 고려하지 않는 판매 시스템 부실 같은 판매 설계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A은행은 미‧중 갈등 등으로 홍콩H지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었음에도, 지난 2021년 신탁수수료 목표를 전년 실적 대비 56.9% 올리면서 ELS 판매를 전사적으로 독려했다. 또 B은행은 2021년 1분기 두 차례 ELS 판매 프로모션을 실시하고 실적 데이터를 회사 게시판에 안내하며 경쟁을 부추겼다. 일부 은행은 핵심성과지표(KPI)에 ELS 판매 실적을 반영했다. ELS 판매 한도 기준을 내부 승인 절차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완화해 투자자 손실 위험을 오히려 더 키운 곳도 있었다. 내부 통제를 담당해야 할 비예금상품위원회는 형식적으로 운영하거나 사후관리가 미흡했다는 게 금감원 검사 결과다.

“거래 목적 확인 안 해 노후 자금 투자도”

ELS 판매시스템에서도 결함이 있었다. 원래 ELS는 투자자 성향분석 시 6개 항목(거래 목적‧위험 태도‧금융상품 이해도‧재산 상황‧투자성 상품 경험‧연령)을 필수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금감원 검사 결과 특정 은행은 ‘거래 목적’ 항목에 점수를 배정하지 않아 ‘노후 자금 마련’이나 ‘단기 운영 목적’을 선택해도 ELS에 가입할 수 있게 했다. 일부 증권사는 투자자 성향 판단에 ‘재산 상황’에 대한 확인도 누락했다.

또 ‘손실 감내 수준이 20% 미만’이거나 ‘단기 투자를 희망’하는 부적합 투자자에게도 가입을 허용한 은행과 증권사도 있었다. 과거 20년 동안 원금 손실이 발생한 적이 있었지만, 손실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분석 기간을 일부러 10년으로 줄여 설명해 투자 위험을 축소한 은행도 적발됐다.

판매사들은 판매 설계뿐 아니라 개별 판매 과정에서도 대리 가입 및 허위 녹취, 고령투자자 대상 적합성 원칙 및 설명 의무 위반, 녹취 의무 위반, 서류 변조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판매사 요인 따라 은행 25~50%까지 기본 배상

금감원의 배상비율은 판매사 요인과 투자자 요인을 나눠서 설정했다. 금감원은 특히 은행들의 ELS 판매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잘못돼, 모든 은행이 적합성이나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별로 판매 설계상의 책임을 물어 최소 20~30%의 기본 배상 비율을 책정했다. 예를 들어 특정 은행의 기본 배상 비율이 30%라고 하면, 개별 판매 과정상의 문제와 별개로 해당 은행에서 ELS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본 배상 비율 30%를 적용받는 것이다.

다만 증권사는 일부 증권사만 특정 기간에 한해 일괄 지적 사항이 발견됐다. 이 때문에 일괄 지적 사항이 나오지 않은 증권사는 개별 사례에 따라 배상 비율을 따로 정한다. 여기에 개별 판매 과정에서 부당 권유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10%포인트를 가산해 최대 40%까지 기본 배상 비율을 받을 수 있다. 또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물어 은행은 10%포인트, 증권사는 5%포인트를 가중한다. 다만 온라인으로 비대면 가입했을 경우 내부통제 부실 책임이 적어 은행은 5%포인트, 증권사는 3%포인트만 가중하기로 했다. 이런 방식을 종합하면 판매사 요인을 고려해 은행은 25~50%까지, 증권사는 23~45%까지 배상 비율을 받을 수 있다.

투자자 상황 따라 비율 차감…0~100%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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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여기에 금감원은 투자자별 상황을 고려해 배상 비율을 더 올리거나 깎기로 했다. 금융취약계층인 고령자에게 팔거나, 자료 유지 및 판매에 부실이 있을 경우 배상 비율을 올리고, ELS 투자 경험이 많거나 과거 수익이 많이 났다면 배상 비율을 깎는 방식이다. 이런 기준으로 배상비율을 최대 45%를 추가 가산하거나 45% 차감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기타 고려되지 않는 사안까지 반영해 배상비율을 10% 범위에서 조정하도록 했다. 결론적으로 투자자 성향까지 고려하면 배상비율이 0%가 될 수도 있고 100%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분쟁 조정 이제 시작…“임원 제재 등도 검토”

이번에 발표한 분정조정기준안은 금감원의 1차 배상안에 불과하다. 은행과 증권사가 해당 배상안이 수용해야 최종 배상안이 결정된다. 다만 과거 DLF와 달리 배상 기준이 되는 사례가 촘촘하게 나뉘어 있고, 투자자 별로 상황이 다르다 보니 배상안 확정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빠르면 다음 달부터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대표 사례에 대한 분쟁 조정 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분쟁조정과 상관없이 금감원이 금융사에 요구하고 있는 자율배상도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금융사들이 자율배상을 먼저 하면 이를 바탕으로 제재 경감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검사 결과 확인된 위법부당행위에 대해선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기관‧임직원 제재 등을 고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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